한글학회 (한글)

한글
한글
언어·문자
단체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
이칭
이칭
국어연구학회, 배달말글몯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
내용 요약

한글학회는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로 정하였다. 1928년에 착수한 『큰사전』 편찬 작업을 28년 만인 1957년 마무리 하였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후에는 교과서를 편찬·보급하였으며, 국어 교사를 양성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의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
개설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우리 민족의 문맹을 깨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창립 초기부터 한글학회의 활동은 우리 말글의 수호와 연구, 그리고 보급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목표를 두었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와 국어학 발전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꾸준히 정기간행물을 발간하여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국내외의 지회와 부설기관을 통해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한다.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바꾸고, 1913년 3월 23일 ‘한글모’로 바꾸어 1917년까지 활동하다가 4년 동안 활동이 중단되었다.

1921년 12월 3일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등이 모여 국어연구 및 국어운동단체인 ‘조선어연구회’로 이름을 고쳐 재건하였다. 10년 뒤인 1931년 1월 10일의 총회 결의에 따라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고치고, 광복 뒤 1949년 9월 5일 정기총회에서 다시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모임은 창립 당시부터 단순한 학문의 연구만을 위한 학회는 아니었다.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그의 정신과 학문을 이어받는 데 힘쓰고, 국어학의 원리와 이론[學理]을 연구하는 한편, 말과 글을 통해서 민족정신을 지키고 불어넣는 일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우리 말글의 수호와 연구, 민족의식 고취를 실천하던 중 1942년 10월 일제에 의해 학회의 중요 인사가 모두 검거되거나 기소되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벌어졌다. 직간접적으로 학회에 관련된 사람들이 투옥되어 학회활동이 다시 중단되었으나,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활동을 다시 벌여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식민지 시기에는 우리 말글의 수호와 연구, 그리고 보급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활발히 활동하였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이라 정하였는데, 이것이 ‘한글날’의 시초이다.

1929년 한글날에는 100여 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여 국어사전 편찬에 착수하였다. 1939년 원고가 1/3 가량 완성되어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을 고친다는 조건으로 다음해에 출판허가를 받았다. 1942년 봄에는 조판이 시작되고 가을에 모든 원고가 완성되어 교정이 시작될 무렵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나 사전 편찬이 중단되었다.

1930년 12월 총회에서 ‘맞춤법 통일’, ‘표준말 제정’, ‘외래어 표기법 통일’ 등을 결의하고, 맞춤법제정위원을 두어 1932년 12월에 원안이 이루어졌다. 이 원안은 1년 동안의 수정작업을 거쳐 1933년 10월 19일 임시총회에서 결정되어, 그 해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약 3년에 걸쳐 제정한 것으로, 한국어 정서법의 근간이 된다.

1931년부터 조선일보동아일보 두 신문사에서 벌인 ‘문맹퇴치운동’에 발맞춰 교재편집과 교정을 맡고, 많은 회원을 강사로 보냈으나, 순수한 글자계몽운동마저 왜경(倭警)에 의해 중단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의 공통어가 될 표준말 확립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 학회는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어 1935년 1월부터 1936년 8월까지 표준말 사정(査定)을 끝내고, 그 해 10월 28일 한글날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공표하였다.

1941년 1월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착수한 때부터 준비하던, 외국의 사람이름[人名]과 땅이름[地名]의 표기를 통일하는 데에 필요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완성하여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혼란기에 우리 말글교육의 바탕이 되는 『한글첫걸음』 · 『초등국어교본』 · 『중등국어독본』 등의 교과서를 편찬 · 보급하였으며, 한글강습회와 ‘세종 중등국어 교사양성소’를 통하여 국어교사를 양성하였다.

한편,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중단된 사전편찬작업을 정상화하여, 1947년에 『큰사전』 제1책, 1949년에 제2책을 간행하였다. 제3책의 인쇄와 제4책의 조판이 끝날 무렵 6 · 25 전쟁이 일어나 중단되었다가, 1957년 한글날에 마지막권인 제6책을 간행하여 『큰사전』의 편찬사업을 마쳤다.

광복 후 70여 년 동안 한글학회는 민간 학술단체로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글 전용, 한글 기계화,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우리 말글의 교육과 보급 등 각종 우리 말글 진흥 사업을 펼쳐왔다.

또한 수백 차례의 국어학 연구발표회를 열었으며, 대규모의 국제대회도 2008년까지 6회 개최한 바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북한의 언어 및 언어학 연구,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해마다 두 차례씩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국어학자들의 심도 깊은 연구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정기간행물로는 1932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학-언어학 학술지인 『한글』을 발행하고, 『문학 한글』 · 『교육 한글』 · 『한힌샘 주시경 연구』 · 『한글 새소식』 등을 발행하여 인문학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현황

한글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위하여 2000년부터 ‘외국인 한국어 발표 대회’와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이름 선정’, 2005년부터는 ‘휴대전화 쪽글(문자) 자랑’, 2012년부터는 ‘한글 손글씨 공모전’ 등과 같은 우리 말글 진흥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기간행물로 1932년 창간한 기관지 『한글』은 2020년 현재까지 통권 327호가 발행되었으며, 이외에도 『문학 한글』, 『교육 한글』, 『한힌샘 주시경 연구』, 『한글 새소식』 등을 꾸준히 펴내었다. 1972년부터 매월 발행한 『한글 새소식』은 말글 교양 잡지로서, 2020년 통권 569호를 발간하였다.

한글학회는 2020년 현재 부산, 전북, 대구, 대전, 김해, 인천, 경남, 광주 · 전남, 울산, 진주, 충남 · 세종 지회 등 11개의 국내 지회와 일본 도쿄 분회, 핀란드 분회, 중국 흑룡강성 지회, 일본 간사이 지회, 중국 절강성 지회 등 6개의 국외 지회를 두고 있고, 부설 기관으로 한말글문화협회, 한국어교육원, 한글서체연구원이 있다.

이들 지회와 부설기관을 통해 국어순화 경시 대회, 글짓기 대회, 한글 붓글씨 쓰기 대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우리말과 우리글의 선양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2011년에는 서울시와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업무 협약을 체결하여 쉬운 행정용어 사용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2011년부터 한글날 공휴일 지정 청원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쳐 그 뜻을 이루었다.

또한 2013년부터 국회기와 국회 휘장, 국회의원 배지 한글화 운동을 주도하여 관련 법안 통과를 이끌어 냈으며,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건립을 청원하여 국비 지원이 확정되어 2014년 8월 29일 제막식을 개최하였다.

2020년 현재 정회원 733명, 준회원 36명, 그리고 일반회원 7,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글학회 100년사』(한글학회, 2010)
한글학회(http://www.hangeul.or.kr)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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