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단동과 북한의 경계를 이루는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대륙의 경계로 군사요충지 역할을 했다. 하류인 동강만(東江灣)에서 발해만(渤海灣)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 탓에 일찍부터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해상 수운이 발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압록강 중상류에 수력발전 댐인 수풍댐을 세워 전력을 생산하였다.
전통시대에 조선과 중국은 양국의 외교사절을 파견하였으며, 조선의 사신이 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길목이 의주 압록강과 단동의 구련성을 경유하는 노선이었다. 구련성에서 심양 방향으로 가다 보면 책문(柵門, 현재의 변문진)이 있는데, 이곳에서 조선시대 책문후시(柵門後市)가 이루어졌다. 약 600년간 1,000회 이상 양국의 외교 사행이 오간 압록강과 단동은 한중인문교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대륙을 넘나들던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이동경로가 되기도 했다.
단동의 옛 이름은 안동(安東)이다. 단동은 고구려 영토였으나 고구려 멸망 후 당의 안동도호부 관할에 있다가 발해의 영역으로 포함되었다. 금 · 원 시기에는 파속부로(婆速府路)에 속하였고, 청이 중원을 장악하고 봉금지대(封禁地帶: 청은 동북 만주 일대를 만주족의 조상이 흥기한 신성한 곳으로 여겨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설정하고 약 200여 년간 봉금함)를 설정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다. 봉금령이 해제된 이후 1876년 안동현(安東縣)이 설치되었으며, 1903년에 대외개방 항(港)이 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후,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진출기지가 되었다. 1934년 만주국에 의해 안동성(安東省) 안동현(安東縣)이 되었다. 1965년에 단동시(丹東市)로 개칭하였다.
요령성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단동은 동북아경제권, 환발해권, 황해경제권의 중심에 위치하는 지정학적 특성을 가진다. 산업 · 항만 · 물류 · 관광 중심도시로서 방직공업, 전자공업, 농산물이 특히 유명하다. 행정단위는 3개의 시할구와 2개의 현급시, 1개의 현으로 조직되어 있다. 전체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약 245만 명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국이 북한의 후방을 지원하는 병참기지로 단동이 적극 활용되었다. 1911년 개통된 압록강철교(鴨綠江鐵橋)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교량이 단절되었다. 현재 북한 중국간 교역품의 운송은 1943년 복선으로 개설된 압록강철교(鴨綠江鐵橋, 944m)를 통하고 있다.
또한 단동은 북한과 중국 대륙을 잇는 아시안하이웨이(Asian Highway)의 첫 구간(AH1) 중국 내 출발지이기도 하다. 압록강 하구인 황금평(黃金坪) 일대에 건설 중인 왕복 4차선의 압록강대교(鴨綠江大橋, 3,030m)는 황금평특구개발사업 등 북 · 중 개혁개방과 경제협력의 상징적인 모델로서 아시안하이웨이의 경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