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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통(故事通)

근대사문헌

 1943년 최남선이 『조선역사강화』를 수정, 증보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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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43년 최남선이 『조선역사강화』를 수정, 증보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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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943년 삼중당서점에서 발행되었다. A5판, 활자본.
1951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육당전집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육당최남선전집』 전15권을 간행할 때 제1권 통사편(通史篇)에 『조선역사강화』와 함께 수록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저자는 1930년『조선역사강화(朝鮮歷史講話)』를 발표하기까지는 주로 우리나라 상고사와 단군연구에 주력했는데, 1928년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이 된 뒤에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개설서를 썼다.
이 책은 『조선역사강화』를 수정하고 증보해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장절(章節)과 분량이 전자보다 두 배 정도 증가되었고, 기술된 내용에 전문성을 띤 것도 있다. 책의 성격과 저술동기는 저자가 책머리에 간단히 적은 서문에 나타나 있다.
“사회가 있으면 문화가 있고, 문화는 통서(統序)를 좇아서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에 관한 사적(史的) 지식이 언제 누구에게든지 필요한 까닭이 되는 것이다. 대동아전쟁이 발발한 오늘에 이르러 체계를 세우는 일과 자료수집에 큰 변모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맞아 체재와 내용을 시대에 알맞게 다듬으면서, 주로 문화사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체재는 앞서 간행된 『조선역사강화』와 같이 조선의 시작에서 후삼국까지의 상고편과, 고려시대사에 해당하는 중고편, 조선 전·후기의 근세편과, 대원군 집정 이후 융희시대와 간도문제까지의 최근편 등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100장에 매장마다 세 개의 항목을 둔 300항목의 절을 설정하였다.
『조선역사강화』와 『고사통』의 장절의 수를 비교해보면, 그가 대동아전쟁의 시대를 의식해 체재와 내용을 어떻게 조정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상고시대에 대해 전자는 10장 30절인 데 비해 후자는 20장 60절이다. 중고시대는 전자가 9장 27절인 데 비해 후자는 28장 84절이다.
근세는 전자가 17장 51절인 데 비해 후자는 34장 102절, 최근은 전자가 14장 42절인 데 비해 후자는 18장 54절로 구성되어 있다. 상고편과 근세편은 2배로 늘렸고, 중고편은 3배 이상으로 늘렸다. 그러나 최근편은 원래의 14장에서 4개장을 늘린 정도이다.
여기서, 그가 시국을 의식하면서 역사서술을 조정한 시기가 민족항일기에 해당하는 최근세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결국, 저자가 민족항일기 말기의 극심한 탄압으로 당시의 민족문제와 가장 관련이 깊었던 최근세사 집필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정치와 민족문제의 서술에 제약을 받았던 것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역사기술을 보완하려 한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 『고사통』의 최근편에서는 『조선역사강화』의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을 ‘개혁운동’으로,‘민간의 신운동’을 ‘문화운동’으로 바꾸었다.
또 ‘민간의 신운동’에 있던 항목 ‘국채보상운동’을 빼고 대신 ‘문학과 종교’를 넣었다. 그 밖에 문화와 관련된 4개의 장(신풍조·신시설·광무연간의 신문물·재판제도)을 신설해 일본의 조선침략 이후의 문화적 개선을 소개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조선역사강화』에서는 중고편의 고려시대에 관한 서술이 주로 정치사와 국제관계에 치중되어 있고 고려 말 왜구를 ‘왜구(倭寇)’라고 지칭하고 있음에 비해서, 『고사통』에서는 그 분량이 3배 이상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주로 문화에 관련된 것이며, ‘왜구’라는 말 대신 ‘해구(海寇)’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고사통』은, 첫째 1930년『동아일보』에 연재된 「조선역사강화」를 대본으로 하고 증보해 단행본으로 만든 책이며, 둘째 그 내용도 정치 및 국제관계의 것은 대부분 전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간혹 일본과의 관계에 관한 것은 그들의 침략을 은폐하거나 미화하는 쪽으로 수정했으며, 셋째 전자에 비해 2배 정도 증보된 부분은 대부분 문화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집필 당시 저자를 제약한 일본의 탄압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저자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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