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군(甲山郡)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아오지만호로 부임하던 중인 이 군의 무과 출신 박경태(朴慶泰)가 안성·죽산 등지에서 반란군을 물리치고 이인좌를 사로잡았다.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에 방리(坊里)는 읍사(邑社)·허천사·호린사(呼麟社)·웅이사(熊耳社)·종포사(終浦社)·이리사(二里社)·회사(會社)·동인사·운총사·혜산사·별해사(別害社)·허린사(虛麟社)·별사(別社)·진동사의 14사에 호수 3,711호, 인구 1만6574명(남자 7,583명, 여자 8,991명)이었다. 또 한전(旱田)은 원전(元田) 1,226결 76부 7속과 속전(續田) 1,934결 68부 3속이 있고, 관직은 도호부사 종3품 1명, 좌수 1명, 별감 3명, 군관 100명, 아전 80명, 지인(知印) 20명, 군뢰(軍牢) 30명, 사령 90명, 관노비 126명, 교노비(校奴婢) 23명, 남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