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식토기 ()

의생활 /식생활
물품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이칭
이칭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물품
재질
용도
물이나 곡물의 보관 및 저장
제작 시기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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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정의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겹아가리와 몸통의 접합 부분이 희미하게 선상으로 남는 형태(유사겹아가리, 퇴화겹아가리)로 변하고, 겹아가리 폭이 2.5㎝ 내외의 짧은 것에서 7㎝ 내외의 긴 것으로 변한다.

아울러 짧은빗금무늬도 겹아가리 전체에 새겨지다가 점차 하단부에 제한되거나 몸통에 걸쳐 새겨지는 변화를 겪는다. 겹아가리빗금무늬토기에 골아가리무늬나 구멍무늬가 추가되기도 하는데, 이는 같은 시기에 존재하는 역삼동식토기(역삼동 유형)와의 문화접변으로 나타난다.

가락식토기 자체는 한반도 남부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가락식토기를 포함하여 특징적인 집자리 형태, 석기 등 유물 복합체로서의 가락동 유형은 대전 용산동, 둔산, 신대동, 궁동유적, 청주 용암, 내곡동유적 등 금강 유역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주변 집단과의 접촉과 관계를 통해 주변으로 확산된다.

가락식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는 장방형 내부에 돌두름 화덕자리와 초석(礎石)이 설치되는 것이 특징인데, 점차 집자리 평면 형태가 장방형에서 세장방형으로 변하고, 토광(土壙)돌두름 화덕자리는 1기에서 2기 내지 3기로 늘어나며, 초석은 2열에서 1열로 변하게 된다.

기원과 연대

가락식토기를 구성하는 겹아가리 요소는 신석기시대 후 · 말기부터 청동기시대 전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 동북 지역 일대에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중국 동북 지역의 편보(偏堡) 문화, 랴오둥반도의 고려채(高麗寨)유적, 청천강 유역, 대동강 유역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대동강 유역의 팽이형토기(각형토기)는 일찍이 가락식토기의 기원으로 여겨져 왔다. 팽이형토기는 좁은 바닥을 가지고 겹아가리는 독모양(전형), 항아리모양(변형)에 부가되는데, 빗금무늬가 몇 개 단위로 시문된다. 또한 대동강 유역 주거 구조는 무시설식(無施設式) 화덕자리와 기둥구멍이 설치되어 가락식토기 출토 집자리와는 차이가 있다.

이와 달리 청천강 유역 겹아가리토기는 바닥이 더 넓어 안정적이고, 빗금무늬가 등 간격으로 시문되는 점에서 가락식토기와 공통된다. 집자리 구조 역시 토광돌두름 화덕자리, 초석으로 가락식토기 집자리와 유사성이 확인된다.

따라서 금강 유역 일대 가락동유형 및 가락식토기는 청천강 유역 겹아가리토기 문화 집단의 이주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로 보아 가락식토기가 제작되고 사용되는 때는 서기전 13세기에서 서기전 9세기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안재호 · 이형원 편, 『청동기시대의 고고학2 편년』(한국고고환경연구소 학술총서 12, 서경문화사, 2016)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중앙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 26, 진인진, 2015)

논문

박순발, 「흔암리유형 형성과정 재검토」(『호서지방의 선사문화』, 제1회 호서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요지, 1999)
김정학, 「광주 가락리 주거지 발굴 보고」(『고문화』 40,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63)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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