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월성동주거지(大邱月城洞住居址)는 대덕산(659m)에서 뻗은 언덕 끝 학산(138m) 일대와 대덕산, 청룡산(793m) 대구분지 서남부에서 발원한 진천천 및 성당천 등이 서쪽으로 흐르며 형성한 월배 선상지(扇狀地) 일대에 분포한다.
1960년대부터 이 일대에 지표조사를 통해 대규모 선사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지적되었고, 1988년 경북대학교박물관이 학산의 남서쪽 말단에서 월성동 주거지로 명명된 청동기시대 집터 2기를 발굴하면서 유적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988년 조사에서 확인된 집터 2기는 80m 정도 떨어져 독립적으로 분포하는데, 모두 직사각형으로 길이는 각각 610㎝, 850㎝에 이른다. 1호에서는 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孔列文〕 등의 역삼동식 토기와 돌도끼〔石斧〕, 가락바퀴〔紡錘車〕, 간돌화살촉, 숫돌이 출토되었고, 2호에서는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가 새겨진 가락동식 토기를 비롯하여 간돌검〔磨製石劍〕, 돌도끼, 반달돌칼,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1997년에는 이곳과 가까운 곳인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476-2번지에서 추가로 청동기시대 전기의 집터 3기와 조선시대 구덩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학산 동남쪽 맨 끄트머리 언덕에는 가늘고 긴 직사각형, 직사각형, 네모반듯한 모양의 집터 14기가 확인된 송현동유적이 있는데,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흔암리식 토기, 간돌화살촉,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집터 구조와 형태, 출토 유물로 보아 학산 일대에는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기의 생활유적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배 선상지 일대는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60여 개소가 넘는 유적이 밀집 분포하는 대규모 유적이다. 구석기시대 문화층(월성동 777-2번지 유적), 신석기시대(월성동 1275번지), 초기 철기시대(월성동 777-2번지 유적), 삼국시대(월성동 585번지, 월성동고분군 등), 통일신라시대(월성동 1412번지, 월성동 1300번지 등), 고려~조선시대(월성동 498번지, 월성동 739번지, 월성동 600번지 등) 생활유적과 무덤유적이 확인되지만, 밀도가 가장 높은 것은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월배 선상지 일대 대부분의 유적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구덩이〔竪穴〕 등의 생활 유구와 고인돌, 돌널무덤〔石棺墓〕, 돌덧널무덤〔石槨墓〕 등의 무덤과 입석(진천동 입석(사적 411호), 월암동 입석 등) 등이 분포한다. 월성동 566번지, 월성동 1150-1번지 등에서 덧띠무늬〔突帶文〕토기가 출토되는 등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유적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전기의 역삼동식, 흔암리식, 가락동식 토기 단계의 집터와 출토 유물, 중기의 송국리형 주거와 출토 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무덤유적으로는 월성동 지석묘군, 지천동 지석묘군, 상인동 지석묘군을 비롯하여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등 다양한데, 지석묘는 묘역을 조성한 묘역지석묘를 비롯하여 다양한 구조의 지석묘가 확인된다. 이들 무덤유적에서 출토되는 돌화살촉(일단경식) 및 토기(외반구연토기) 조각으로 보아 무덤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는 시점은 청동기시대 중기 송국리 문화 단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