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체신금사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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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1788년 여인들의 가체를 금할 것을 규정한 법제서.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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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88년 여인들의 가체를 금할 것을 규정한 법제서. 사목.
서지적 사항

1책 18장. 정유자(丁酉字) 활자본.

내용

내용은 전반부를 한문으로 쓰고 뒤에 다시 한글 번역 및 별도의 한글 전교(傳敎)를 실었다. 본문은 대략 가체신금의 내력과 절목서(節目序)·조목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원래 가체란 여자가 머리 위에 타인의 머리 다래[月子]를 보태어 높고 넓게 하는 것이다. 원류는 원나라의 고고관(姑姑冠)이 고려에 들어와서 머리 모양을 높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조선 초부터 가체 금지의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정식으로 발의되기는 1747년(영조 23) 7월 유척기(兪拓基)의 진언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머리 모양이 없다 하여 미루어 오다가 1756년에 다시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그래도 시행이 잘되지 않자 1788년(정조 12)에 가체 금지 명령을 내리고 사목을 정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족의 처첩이나 여항의 부녀로서 편발(編髮 : 관례를 하기 전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을 머리에 얹는 일과 제머리를 머리에 얹는 일을 일체 금한다. 둘째, 낭자의 쌍계(雙髻 : 쌍상투)나 사양머리[斜陽髻]는 낭자계(娘子髻)로 대신한다.

셋째, 모든 수식에 쓰던 금옥주패(金玉珠貝)나 진주당기(眞珠唐紒)·진주투심(眞珠套心) 등은 일체 금한다. 넷째, 어유미(於由味)나 큰머리[巨頭味]는 명부(命婦)가 항시 하고 있는 것이니, 인가의 혼인에 소용되는 것은 금하지 말라. 다섯째, 족두리의 장식물은 일체 금한다.

여섯째, 상천(常賤) 여인이나 공사천(公私賤)은 본발을 위에 틀어 올리되 여기에 가체하는 것을 금한다. 일곱째, 궁방의 무수리[水賜伊]나 의녀(醫女)·침선비(針線婢), 또는 기방의 기녀는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하기 위하여 가리마를 얹게 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사상의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됨과 동시에 당시 머리 치장의 모습과 그 명칭에 관한 자료로서 이용된다.

이 책은 18세기 후반의 국어 자료로서 이용되는데, 여기에 나타나는 어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어두 된소리의 표기에 주로 ㅅ계 합용 병서를 사용하고 있으며, ㅂ계 합용병서는 글만이 보일 뿐이다. 어간말자음군은 뒤에 어떠한 음이 오든간에 그 어간을 밝혀 적고 있다(거ᄃᆞᆲᄒᆞᄂᆞᆫ, ᄇᆞᆰ게 두 가ᄃᆞᆰ을 등).

ㄷ구개음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도리∼죡도리·엇지, 고치미, ᄀᆞᆺ치), 어두 음절에서도 ‘·’가 혼기(混記)되고 있다(ᄯᆞᆫ머리∼○ᄂᆞᆫ). 주격조사 ‘―가’가 ‘이’모음 아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도리가 궁쥬ᇰ졔양이라 말이라), ‘∼으로 겨요셔’가 주어의 기능을 보이는 예가 나타난다(우흐로, 겨오셔, 단연이, 결졍ᄒᆞ샤).

처격조사에는 ‘-의’가, 조격조사에는 ‘-으로’, ‘-로’가, 대격조사에는 ‘-ᄅᆞᆯ, -을’이, 속격조사에는 ‘-의’가 우세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여 표기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보이고 있다. 규장각도서,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 등에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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