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사각인 옥으로, 제후를 봉하는 신인(信印)으로 제사나 조빙(朝聘) 때 든다. 면복·원유관포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규도 중국제이다.
애초의 뜻은 제후로 봉해질 때 천자로부터 받는 것이다. 흙토(土)자를 둘 겹친 것은 천자로부터 받은 땅을 재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고려시대에도 면복과 더불어 규를 받았지만 고려 초의 제도는 알 수 없고, 공민왕 때 명나라로부터 받은 규는 그 길이가 아홉치[寸]였다.
조선시대에도 태종 이후 수차에 걸쳐 명나라로부터 같은 것이 보내져 그 제도가 ≪국조오례의서례 國朝五禮儀序例≫ 길례(吉禮) 제복도설(祭服圖說)에 실려 있다. 그런데 면복은 명나라의 친왕복(親王服)과 같은 것이었고 규는 명나라의 군왕복(郡王服)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때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자 면복과 규는 명나라의 황제와 같이 12류면, 12장복, 1척2촌인 백옥규를 사용하였다. 이 때의 규는 진규로서 위 끝이 뾰족하고 겉에는 산형(山形) 4개를 조각하였으며 밑을 황기(黃綺)로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