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진 ()

회화
인물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한강변의 타살」, 「역사의 빛」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9년 12월 27일
사망 연도
1992년 2월 24일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진주(晉州)
정의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한강변의 타살」, 「역사의 빛」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진주 출신. 본관은 진주(晉州). 1965년 홍익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대학 졸업 후 현대미술운동의 젊은 그룹 ‘논꼴’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1967년 정찬승, 정강자 등과 함께 ‘신전’ 동인을 결성하고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하여 「색물을 뿜는 비닐 주머니」(1967.12.11),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12.14)을 시연하였고, 1968년에는 「색 비닐의 향연」, 「투명풍선과 누드 해프닝」, 「화투놀이」, 「한강변의 타살」, 테크놀로지 작품 「시각 Ⅰ, Ⅱ」 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1971년에 국내 최초로 판화 공방을 마련하고 판화교실을 열어 국내에 판화를 보급했고, 1973년에는 입체와 설치 작업에 전념하여 천, 노끈, 밧줄, 골판지 등의 오브제로 물질의 특성과 인식의 현상을 탐구하는 개인전 ‘형(形)의 상관’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열었다. 1975년부터는 선 긋기를 중심으로 회화작업을 재개하여 서울 그로리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선’과 ‘가락’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역사를 탐구한 「가락」 연작(1985년), 고대 기마인물상, 토우, 불상 등 역사적 소재를 통해 한국의 정신적 원형을 모색하는 「역사의 빛」 연작(1989년) 등을 발표하며 1990년대까지 판화와 회화작업에 몰두하였다.

1990년에 이숙희, 이종진 등과 함께 결성한 ‘무르와’의 모임을 갖던 중, 1992년 2월 2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판화전으로는 1974∼1976년 ∞(무한대) 동인전, 1975∼1985년 한국현대판화가회전, 1981년 동아일보사 국제판화비엔날레 등에 참가하였고, 국제전으로는 1979∼1985년 ‘대가(大家)’와 청년작가전(파리), 1980∼1984년 살롱 콩파레종(파리), 1981년 상파울루비엔날레 등에 참가하였다.

1973년부터 1987년까지 홍익대학교 · 추계예술대학교 등에 출강하였으며, 1980년부터 1990년까지 한성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 한불미술협회 운영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판화분과 심사위원을 지냈다.

1991년에 제작한 300호 크기의 대작 「역사의 빛」이 국회의사당에 걸려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3월 1일부터 3월 6일까지 경기도 모란미술관에서 강국진 3주기 추모전 ‘강국진을 기리는 사람들의 그림 잔치’가 열렸다.

참고문헌

강국진(www.kangkuk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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