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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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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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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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
개설

명동화랑은 1970년 12월 서울 명동성당 건너편에 위치한 건설빌딩에 60평 규모로 개관하였다. 개관기념전으로 김기창⋅박노수⋅서세옥⋅김인승⋅도상봉 등의 작품이 출품된 《오늘의 30대전》을 열었다. 1971년 9월 충무로로 이전하였고, 1972년 8월에는 안국동으로 이전하여 ‘한국 현대미술 1957~1977’, ‘추상-상황 및 조형과 반조형전’, ‘이우환전’, ‘박서보전’, ‘김창열전’, ‘김구림전’, ‘이두식전’, ‘권진규전’ 등을 열었으나 경영난으로 1975년 1월 문을 닫았다. 1974년에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전문지인 『현대미술』을 창간하였으나 이 또한 자금난으로 2호를 내지 못하였다.

1975년 7월 오태학⋅김동수⋅김형근⋅송영방 등 화가들의 도움으로 작품 50점을 기증받아 '명동화랑재기전'을 개최하였고, 이듬해 서울 관훈동에서 재개관하였다. 같은 해 동산방⋅명동⋅양지⋅조선⋅현대 등 화랑들이 모여 한국화랑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김문호 사장을 추대하였다. 1980년 관훈동에서 다섯 번째로 재개관 한 명동화랑은 1982년 4월 사장 김문호가 타계한 뒤, 5월 《재불작가 3인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명동화랑은 비구상 회화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1970년대에 추상계열의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였고, 조각가 권진규의 개인전과 유작전을 열어 그의 작품세계를 국내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미술사에 이정표를 남긴 굵직한 기획전시를 많이 개최하여 우리나라 추상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2년 7월 고려화랑에서 김문호를 기념하는 추모전시가 개최되었다. 1994년 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화랑미술제 행사의 일환으로 ‘김문호 명동화랑 사장 추모 자료전’이 열렸으며, 2013년 화랑미술제에서는 조각가 권진규와 그를 후원했던 김문호 사장을 조명하는 ‘명동화랑과 권진규’전이 개최되었다.

참고문헌

『경향신문』(1975. 6. 10/ 1982. 5. 21/ 1999. 5. 7)
『한겨레신문』(1994. 8. 16.)
「한국 화랑의 역사에 관한 연구-1910~1970년대를 중심으로-」(심현전,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작가와 함께 살다간 사람들(2) 김문호-미를 사랑하기에 화상을 고집했소-」(김순지, 『미술세계』27, 미술세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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