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미술구락부 ()

회화
단체
1922년 9월 설립된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매매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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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2년 9월 설립된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매매 기관.
개설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로 경성부 남산정 2정목 1(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 2가)에 설립되었다. 미술품 경매와 함께 골동상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경매의 개최와 함께 경매도록을 발간하여 일제강점기 고미술품 거래와 유통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설립목적

1905년을 전후로 골동품 매매가 시작된 이래 1920년대 이르러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의 체계적 유통을 위해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20년 골동상인 이토우 도이치로(伊藤東一郞), 아가와 시게로(阿川重郞), 사사키 쵸지(佐佐木兆治)가 설립을 논의하여 1921년 말에 주주를 모집하였다. 1922년 3월에는 일본인들의 거류지인 남촌(南村) 소화통(昭和通)에 사옥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준공과 함께 창립되었다.

경성미술구락부의 초대 사장은 고미술상(古美術商) 경영자였던 이토우 도이치로(伊藤東一郞)가 맡고, 상무에는 모리 이노시치로(毛利猪七郞), 이사에는 유카와 우키치(祐川宇吉), 사사키 쵸지(佐佐木兆治) 등, 감사에는 아가와 시게로(阿川重郞), 아라에 쇼타로(荒井初太郞), 와타나베 사다이치로(渡邊定一郞), 마츠모토 다미스케(松本民介)가 선출되어 합의제로 운영되었다. 창립 당시의 주주는 총 85명이었고 이 가운데 고미술상은 18명이었다. 한국인으로는 우경(友鏡)오봉빈(吳鳳彬)이 유일하게 참여하였다.

1906년 설립된 동경미술구락부(東京美術俱樂部)를 모델로 세워졌으며, 1942년 무렵에는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나고야(名古屋), 가나자와(金澤)에 이어 6번째의 규모로 꼽힐 정도로 성장하였다.

1940년에는 건물이 노후하고 공간이 협소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증축을 결의하였고, 1941년 6월 6일에 개축공사를 시작하여 9월에 준공하였다. 1942년에는 『경성미술구락부창업이십년기념지(京城美術俱樂部創業二十年記念誌)』가 발간되었다. 경성미술구락부 주최의 경매회는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기능과 역할

경성미술구락부는 1. 각국에 신구서화(新古書畵), 골동의 위탁판매 2. 각종의 집회장에 사용하는 위석(爲席) 대업(貸業) 3. 이상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목적으로 하였다.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구락부, 친교회(親交會), 고미술상조합(古美術商組合)으로 이루어졌는데,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품 경매를 개최하였고, 경성미술구락부의 주주로 구성된 친교회는 미술구락부의 제반운영을 담당하고, 고미술상조합은 고미술동업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다.

주식회사로 설립되었지만 이윤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골동상들의 친교에 비중을 두고 운영되었다. 경매회는 1년에 많게는 24회에서 적게는 4회씩 개최하였으며 큰 경매에는 경매도록을 함께 발간하였다.

경매활동 외에도 동호인들 간의 교환회와 화가들의 전시회 등을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아카오(赤尾)의 “고려고도기(高麗古陶器) 경매”, 하야시 츄자부로(林仲三郞)의 삼팔경매소(三八競賣所) 등 이전의 경매가 일시적이거나 간헐적으로 운영되었고 여러 종류의 물건을 함께 다루었던 데 비하여, 경성미술구락부는 체계화된 조직과 기관을 가지고 고미술품을 전문으로 다루었던 미술품전문 경매회사이다. 경성미술구락부는 일본인에 의한 도굴과 밀매 등 고미술품 수탈과 함께 시작되었고, 고미술품을 통한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미술품의 사진이 실린 『경매도록』을 발간하여 고미술품의 수장내역과 전래경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1923)
「일제강점기의 경성미술구락부 활동이 한국 근대미술시장에 끼친 영향」(박성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1)
「한국 근대의 골동시장과 경성미술구락부」(김상엽, 『동양고전연구』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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