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채. 세로 65.2㎝, 가로 53㎝.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31번 창고」는 문이 반쯤 열린 창고 앞에 노동자가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파란색의 철문과 붉은 숫자, 창고 안의 검은 공간, 그리고 흰색으로 표현된 인물 등 색의 대비로 인해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한 손에 봉투를 쥐고 우두커니 서 있는 인물은 큰 몸통과 팔다리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작게 그려져 있어서 사실적인 인물의 생김새와는 거리가 있다. 배경의 창고 문은 마치 벽돌 같이 견고한 질감으로 표현한 데 반해, 인물의 얼굴과 몸은 물감을 벗겨내어 거친 질감으로 나타냈다. 특히 몸 부분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흉물스럽게 긁어냄으로서 노동자의 어둡고 불안한 감정 상태를 드러내었다.
조양규는 1948년 일본으로 밀항한 뒤 도쿄 에다가와초(枝川町) 조선인 부락에 거주하면서 조선소와 인근 항구에서 창고 인부로 일하였다. 그는 1952년 ‘일본 앙데팡당전’에 「조선에 평화를!」을 출품하는 것을 시작으로, ‘청년미술가연합’, ‘자유미술가협회’, ‘재일조선미술협회’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 시기 조양규는 조선소와 항구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고」연작(19551958)과 「맨홀」연작(19581960)을 발표했다. 조양규의 그림은 사회 비판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주제를 설명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모티브가 가진 의미나 상징성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였다. 「창고」연작과 「맨홀」연작에서 조양규는 근대화에 따른 자본주의의 심화와 도시화의 가속화로 인해 나타나는 모순과 갈등을 창고와 맨홀로 상징화하여 표현하였다. 「창고」연작에서 창고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상징으로서 노동에서 소외된 채 최저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창고」연작으로 「밀폐된 창고」(1957), 「창고번」(1955) 등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조양규의 작품은 1990년대부터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는데, 「31번 창고」는 그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노동자의 소외, 계급간의 갈등 등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다루는 리얼리즘 회화이면서도 설명적인 형태보다 독특한 물감의 질감을 통해 대상의 감정과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조양규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