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1980년대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이다. 화면 속에 다른 대상 없이 인간만 그렸기 때문에 「인간」 연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군상」 연작 속 사람들의 모습은 몇 개의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표정이나 입체감 없이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표현되어 있다. 「군상」 연작에 그려지는 인물의 수는 작품에 따라서 한두 명에서 수백 명까지 이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진 작품들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군상」 연작은 한국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군상」 연작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보통의 인물화와는 다르게 몇 개의 간략한 선으로만 그려져 있으며 인물의 표정이나 입체감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배경 묘사가 없는 바탕에 자유롭고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표현되어 있다.
「군상」 연작은 대부분 흰 바탕 위에 수묵으로 그리지만 간혹 배경에 채색을 한 뒤에 수묵으로 인물을 그린 것도 있다. 작품에 따라 그림 속에 그려지는 인물의 수는 한두 명에서 수백 명까지, 화면의 크기는 약 20㎝의 작은 화폭부터 약 300㎝의 대형 화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군상」 연작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는 작품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일정한 띠를 형성하여 한 방향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 환희의 몸짓을 하기도 하고 격렬한 동작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인물 표현은 전통적인 인물화의 재현방법에서 벗어나 수묵화의 자유로운 필치와 생동하는 기운을 보여준다. 붓으로 글씨를 쓰듯 추상으로 그려진 인물 형상에서 서예적 필력이 느껴진다.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1970년대 후반부터 타계하기 직전까지 몰두하였던 작품들이다. 화면 속에 다른 대상 없이 인간만을 그렸기 때문에 「인간」연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70년대 후반의 「군상」 연작은 군무 시리즈에 가까웠으며, 이응노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파리에서 접한 후부터 격렬한 저항의 몸짓을 표현한 「군상」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부터 「군상」 연작에는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더 역동적으로 그려졌다. 1980년대 초반에 그려진 「군상」 연작은 군중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이들이 뿜어내는 힘의 분출을 표현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위대로 보기도 하고 반핵 운동의 시위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로서 그가 구사해왔던 여러 가지 화풍이 망라되어 있다. 이응노의 회화는 청년 시절 김규진으로부터 문인화를 배운 이래, 사실적인 산수화, 수묵추상, 문자추상, 군상 연작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모를 거듭하였다. 이 가운데서도 이응노가 청년시절에 그린 대나무 그림과 프랑스에 건너간 이후에 그린 문자추상은 「군상」 연작의 표현형식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1920년대에 그린 대나무 그림은 전통적인 묵죽화법이나 구체적인 대상 묘사에서 벗어난 필획의 움직임에서 서예와 상통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1960~70년대 문자추상에서는 해체되고 재구성된 문자들 사이에서 사람의 형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군상」 연작은 이전에 발표하였던 작품들의 연장으로서, 사람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점과 획으로 간명하게 기호화하여 필획의 기세와 생동감을 더 강조하였고 문자추상에서와 같은 서예의 회화적 조형미를 표현하였다. 폭발적인 필획의 움직임과 분출하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군상」 연작은 동양화의 사의성(寫意性)과 서양화의 추상성을 함께 보여준다.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평생 발전시켜온 작품세계가 망라된 것으로서, 청년기의 대나무 그림부터 반추상과 비정형, 문자추상으로 이어지는 작품세계의 흐름이 「군상」 연작을 통해 완결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동양화의 기운생동하는 정신성과 필획의 조형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세계를 개척하였으며, 198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