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온(子韞), 호는 무명재(無名齋). 강윤리(康允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거례(康居禮)이고, 아버지는 강척(康惕)이며, 어머니는 김숙자(金淑滋)의 딸이다. 강중진(康仲珍)의 형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생질이자 문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7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489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같은 해 10월에 함안군수가 되었으며, 재직기간 선정을 베풀어 1493년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으로부터 선정사실에 대한 장계(狀啓)로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사헌부장령 · 사간원사간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 · 권오복(權五福) · 권경유(權景裕) 등이 대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할 때 장(杖) 80에 정주로 귀양가서 봉수(烽燧)의 야역(夜役: 야간에 불을 피우는 봉수군의 역)을 하였다.
1504년에 무오수죄(戊午受罪: 무오사화로 죄를 받음)로 외방부처된 사람들의 처리안이 나와 결국 능지처참되고, 아들과 형제들도 결장(決杖: 장형을 받음)에다 외방으로 축출당하였다. 1506년(중종 1)에 대사간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효량(孝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