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토성 ()

목차
관련 정보
건축
유적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낙랑군의 토축 성곽. 토성.
이칭
이칭
평양토성리토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낙랑군의 토축 성곽. 토성.
내용

현재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성 안에 건물터·도로·하수구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대동강 남쪽의 언덕에 있으며, 성 안의 땅은 고르지 않지만 북쪽으로 강줄기가 나고 동쪽으로도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천연적인 참호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또, 주위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평지에 성을 쌓는 중국식 터잡음[城基]을 엿볼 수 있다.

토성은 동서 약 709m, 남북 599m의 크지 않은 정방형으로 이루어졌는데, 보루의 붕괴가 심하다. 성 안에서는 집터·관청·도로·하수도 등의 자취가 발굴되었고, 유물로는 막새기와·벽돌·봉니(封泥)·거울·화폐와 화폐를 주조하였던 틀, 구리화살촉·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글자가 새겨진 기와·벽돌·거울·도장 등이 많이 나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성은 낙랑의 중심지이자 조선현(朝鮮縣) 지역의 땅으로서 낙랑군청과 조선현청이 모두 이 성 안에 있었고, 후기낙랑 시대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와 남부도위(南部都尉)의 모든 현까지도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토성을 중심으로 동서 20리, 남북 10리 주변에는 약 1,300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흩어져 있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묘제를 따른 목곽·토곽묘들이 대부분이며, 화려한 장신구들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조선총독부, 1915)
「삼국시대성곽연구(三國時代城郭硏究)」(이원근, 단국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1)
「樂浪土城址の調査」(조선총독부, 『고적조사보고서』, 193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