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996년 4월 석탑을 수리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던 중 발견되었다. 이 사리장엄구의 제작시기는 『삼국유사』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의 기록에 의거하여 감은사의 낙성연대인 682년(신문왕 2)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장엄구는 화려한 전각형의 사리 내함을 만들고 그 속에 수정 사리병을 안치하였으며, 이 내함을 다시 뚜껑이 약간 뾰족한 사각 외함 속에 넣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1959년에 건너편의 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보물, 1963년 지정)와도 구조가 비슷하다.
겉상자에 해당하는 외함의 네 벽면에는 사리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눌러돋움식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사천왕상의 위아래와 양 옆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고 그 양 옆에는 도깨비 장식의 문고리가 배치되어 있다. 사리를 안치한 전각형 내함은 기단과 지붕에 해당하는 천개(天蓋)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의 네 귀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고 아랫면에는 무늬곽을 크게 뚫어 장식하였는데 그 안에는 신장상과 공양보살상이 각각 양각되어 있다. 기단 위에는 사리봉안대를 설치하고 여기에 수정 사리병을 놓았다.
사리병은 높이가 3.65㎝인데, 이 사리병을 위하여 금알갱이 붙임장식으로 정교하게 꾸며진 뚜껑과 받침, 원판 수정제 받침, 금동제 투조받침 등이 동반 장식되어 있다. 내함에는 이 사리 봉안대를 중심으로 사천왕과 승상이 각각 네 구씩 배치되었으며, 기단 둘레에는 난간을 두르고 네 귀에서는 대나무 모양의 기둥을 세워 천개를 받치고 있다.
천개에는 여러 가지 드리개〔瓔珞〕와 방울, 그리고 정교하게 새겨진 작은 화불(化佛)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처럼 천개에 화불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대 불교미술로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일본의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천개와 비교되어 고대 한 · 일 불교미술의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칠곡 송림사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구와 경주 남산 탑곡의 불상조각에 표현된 천개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어 이들 작품에 대한 연대추정의 중요한 근거자료가 되고 있다.
과거에 발견된 서탑 사리장엄구의 천개에서는 네 모서리에 봉황(鳳凰)이 장식된 것에 비하여 동탑의 사리구에서는 네 마리의 용(龍)이 장식되어 있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쌍탑의 사리봉안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기와 구조는 비슷하나 세부장식과 부속 조형물 등에서 다소 다른 특성을 보이는 통일신라시대 불교 공예품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천개에 화불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대 불교미술로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일본의 호류지 금당의 천개와 비교되어 고대 한 · 일 불교미술의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어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