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찰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발원으로 7세기 초에 창건되었는데 670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7세기말에서 8세기 초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은 금당과 5층목탑을 중심으로 한 서원가람(西院伽藍)과 유메도노〔夢殿〕를 중심으로 한 동원가람(東院伽藍)으로 구분된다. 서원가람은 금당과 탑이 좌우로 배치된 호류지식(法隆寺式) 가람배치이다. 그리고 창건 초기의 가람은 와카쿠사가람〔若草伽藍〕이라고 하는데, 서원가람의 남동쪽에 당시의 탑심초(塔心礎)가 남아있다.
현재 호류지는 금당을 비롯한 55개 동이 일본의 국보 및 중요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가삼존불 · 구세관음상 · 백제관음상 · 몽위(夢違)관음상 등 국보로 지정된 불상만 650구에 이른다. 이 밖에도 다마무시주자〔玉虫厨子〕, 전타치바나부인염지불〔伝橘夫人念持仏〕, 금당벽화 등 다수의 불교 공예품 및 회화 작품을 봉안하고 있으며,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중인 호류지 헌납 보물 60여건도 국보와 중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49년 금당의 해체 수리 중에 실화로 금당벽화가 훼손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1950년 법상종(法相宗)에서 독립하여 성덕종(聖德宗)을 개종하고, 그 총본산으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금당을 비롯해 5층목탑, 불상, 불교공예품 등 아스카시대〔飛鳥時代〕 및 나라시대〔奈良時代〕를 대표하는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고대 일본 불교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건축과 문화유산의 보고로서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호류지는 창건 때부터 한반도의 삼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찰의 발원자인 쇼토쿠태자는 고구려의 승려 혜자(慧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백제의 혜총(惠聰)에게도 불교를 지도받았다. 또한 백제에서 파견된 공인들이나 한반도 출신의 승려들이 사찰의 조영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금당의 본존불인 석가삼존상은 백제계 도래인(渡來人) 쿠라츠쿠리노 도리〔鞍作止利〕의 작품이며 유메도노의 구세관음상이나 백제관음상 등도 백제 불상과의 연관성이 있다. 또한 일본 고대 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금당벽화는 고구려의 승려 담징(曇徵)의 작품이다.
호류지는 고대 일본의 불교문화 유산을 고스란히 오늘에 전하고 있는 귀중한 보고이다. 특히 일본 불교의 초기 정착기인 7세기 불교문화의 정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사적 가치는 더욱 크다. 더불어 이시기 일본에서 불교 번성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던 것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승려 및 장인들과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고대 한국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의미가 큰 사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