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의하면 610년(영양왕 21) 백제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채색과 종이·먹·연자방아[碾磴] 등의 제작 방법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승 법정(法定)과 함께 나라(奈良)에 있는 호류사(法隆寺)에 기거하면서, 오경(五經)과 불법(佛法) 등을 강론하고 금당(金堂)의 벽화를 그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석가·아미타·미륵·약사 등으로 구성된 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인 이 금당벽화는 1949년 1월 수리 중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고, 현재는 모사화(模寫畫)가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것이 한 사람의 수법이 아닐 뿐 아니라 요철법(凹凸法)·채색법·인물의 묘사법 등이 서역화풍에 토대를 두고 당풍(唐風)으로 변형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하여 담징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7세기 후반경의 하쿠호시대(白鳳時代)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