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6세기 전반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이후 대화개신(大和改新)이 행해진 645년까지의 아스카(飛鳥)시대에 불교문화가 융성해지자, 이에 대한 국가적 수요 또한 크게 증대하였다. 이에 따라 604년부터 불교화를 잘 그렸던 화공들에게 씨족이나 지역별로 명칭을 부여하고 호과(戶課)를 면제하는 등 화업과 그 세습을 보호, 육성하게 되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나 『쇼토쿠태자전력(聖德太子傳歷)』에 의하면, 이 당시 산배화사 이외도 황문화사(黃文畫師)·책진화사(簀秦畫師)·하내화사(河內畫師)·추화사(揂畫師)도 정한다고 했는데, 이 중 산배화사와 황문화사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의 산성국제번부(山城國諸蕃部)에 기재되어 있는 고구려 출신인 야마시로고마노무라지(山背拍連)와 기부미노무라지(黃文連)의 동계씨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고구려 출신으로 확인이 되는 산배화사와 황문화사의 이름을 가진 화가 집단의 존재는 삼국시대의 우리나라가 일본 회화의 발전에 공헌했음을 말해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이들 화가 집단의 활약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이후 점차 약화되다가 화공사(畫工司)의 폐지와 더불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