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활동한 화가이다. 관련 문헌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현재 문청의 국적 및 생애에 관한 추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인으로, 다이토쿠지[大德寺] 등에서 활동하면서 조선 초기 화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화가로 보는 견해, 둘째, 조선 초기에 활동한 화가로, 일본으로 건너가 다이토쿠지를 배경으로 활동한 인물이라는 견해, 셋째, 일본인으로, 조선 초기 안견파 화풍의 작품과 무로마치[室町] 시대 수묵화 전통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화가라는 견해이다.
문청은 일본어로 '분세이'라고 발음되며, 오랫동안 쇼코쿠지[相國寺]의 선승이었던 죠세츠[如拙, 1410년대 활동]와 혼동되어 왔다. 『증정고화비고(增訂古畵備考)』에 분세이의 도장인 ‘문청(文淸)’이 죠세츠의 인장 중 하나로 소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분세이가 14501460년대 활동한 실존 화가임을 밝힌 일본 미술사학자 후쿠이 리키치로[福井利吉郎, 18861972]는 보스턴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에 소장된 「산수도」에서 ‘문청’ 인(印)을 확인하고 이 인장이 죠세츠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언급했다.
한편, 일본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 소장 「유마거사상」[1457]에는 난젠지[南禪寺]의 선승이었던 존코우 소모쿠[存耕祖黙, ?~1467]가 1457년에 쓴 제찬이 적혀 있어 분세이가 난젠지 승려들과 교유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작을 살펴보면 다이토쿠지 승려들의 후원을 받았음은 알 수 있으나, 문헌 기록의 부재로 승려였는지 다이토쿠지에 고용된 전문 화가였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전칭작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에서 안견파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발견되어 그가 조선에서 일본으로 내도해 활동한 국내 화가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