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하이지(伊丹廢寺)는 1958년부터 1965년까지 일곱 차례의 발굴조사가 행해져, 사원의 규모와 가람배치, 기단축조 수법, 건립 및 폐사 시기 등이 밝혀졌다. 이타미하이지는 8세기 초반에 이 지역의 유력 호족에 의해 건립되어 15세기 무렵에 폐사된 사찰이다. 가람배치는 남쪽을 향해 동쪽에 금당과 서쪽에 목탑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호류지식(法隆寺式)이다. 금당 기단의 규모는 동서 20m, 남북 18m이며, 축조방식은 지복(地覆)에 벽돌을 깔고, 그 위에 작은 돌(栗石)과 기와를 교차로 쌓아 올리는 와적기단(瓦積基壇)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와적기단은 백제에서 성립하여 발전한 것으로 정림사지와 능산리 사지, 부소산 사지, 왕흥사지 등 백제의 건축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러한 축단방식이 널리 보급되는 것은 660년 백제 멸망 이후인데 백제의 유민들이 대거 일본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축단기술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8세기 초반에 건립된 이타미하이지는 백제의 유민이 조영에 직접 참여하였거나 혹은 그 기술을 전수받은 이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타미하이지 이외에도 백제의 와적기단이 발견되는 이 시기의 일본 사찰은 아노우하이지(穴太廃寺)·스후쿠지아토(崇福寺跡)·미나미시가하이지(南滋賀廃寺)·카타시라가와하이지(北白川廃寺)·시텐노지(四天王寺)·신도하이지(新堂廃寺)·가타키하라하이지(樫原廃寺) 등 10여 곳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