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탑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고려시대의 금동탑.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소재구 (국립청주박물관,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시대의 금동탑.

개설

198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금동탑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수미좌(須彌座)를 본뜬 정방형의 기단 위에 5층탑신과 상륜(相輪)을 얹고 있으나 두 층 정도의 탑신과 상륜 부재의 일부가 결실된 듯하다.

내용

기단에는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받침기둥)를 새겼고, 그 사이에는 직선무늬와 연주문(連珠文)을 X자형으로 겹겹이 채운 면벽이 마련되었다. 기단 밑부분에는 입화형(立花形)의 안상(眼象)이 뚫려 있고 그 위에 연꽃잎이 띠를 이루었다. 기단의 윗부분은 당초무늬가 어우러진 난간을 세웠는데 한쪽 면에 계단을 내었다.

1층탑신은 벽에 기둥과 틈살, 출입문 등을 내고 기둥 위에는 두공(枓栱)을 짠 다음 지붕을 받았다. 지붕은 겹서까래의 처마와 기왓골, 네 귀의 잡상(雜像), 용머리, 풍탁(風鐸) 등이 잘 표현되었는데 일부가 없어진 흔적이 있다.

2층탑신부터는 탑신의 높이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조형 수법은 1층과 동일하며 다만 여기서부터 5층까지는 탑신의 기둥 사잇벽마다 불좌상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상륜은 노반(露盤)과 꽃띠를 두른 복발(覆鉢), 앙화(仰花)가 차례로 얹혀 있고, 그 위에는 보주(寶珠)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부재는 상실되었다. 전체적으로 도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기단이 넓고 중후하며 탑신의 지붕은 곡선이 유연하고 경쾌하여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탑 전체에 무늬장식과 부착물이 많아 공예탑적인 특성이 완연하지만 목탑의 형태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므로 목조 건축의 연구 자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11세기경의 고려탑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국보』5-공예-(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