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 부산훈도이자 『첩해신어』를 저술한 역관.
내용
주로 대판(大阪) 또는 경도(京都) 부근에서 10년 동안의 억류생활을 보냈다. 1600년 9월 세키가하라전투(關ケ原戰鬪)가 일어났을 때에는 도쿠가와(德川家康) 쪽에서 전투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으며, 1601년 6월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포로 중 남녀 250명이 송환되어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그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일본의 풍속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어에도 능통하여, 1609년(광해군 1)에는 역과(譯科)의 왜학(倭學)에 합격하였으며, 전후 다섯 차례에 걸쳐 부산훈도(釜山訓導)에 임명되어 일본과의 통상외교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617년과 1624 · 1636년 역관으로서 연속 세 차례나 일본에 다녀왔는데,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을 데려오는 일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멀고 가까움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닌 사실이 당시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뒤 품계가 가선대부에 이르렀으며, 저술로는 일본어 학습서인 『첩해신어(捷解新語)』 10권을 남겼다. 이 책의 원고가 모두 완성된 시기는 1625년 이후에서 1636년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책이 실제로 간행된 것은 1676년이었다. 1678년부터는 이 책이 사역원 왜학의 과시용 교과서로 쓰였다.
참고문헌
- 『통문관지(通文館志)』
- 『부상록(扶桑錄)』
- 『동사록(東槎錄)』
- 『국어학사(國語學史)』(강신항, 보성문화사, 1977)
- 『朝鮮語學史』(小倉進平, 日本刀江書院, 1964)
- 『捷解新語解題』(森田武, 京都大學文學部編, 195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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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첩해신어 : 捷解新語(한古朝40-4)(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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