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성

  • 언어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때, 부산훈도이자 『첩해신어』를 저술한 역관.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산훈도
  • 주요 저서첩해신어(捷解新語)
  • 출생 연도1581년(선조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민 (국민대학교, 국어학)
  • 최종수정 2025년 05월 2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때, 부산훈도이자 『첩해신어』를 저술한 역관.

내용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주교수(籌敎授)였던 유경(有慶)이다.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1592년 10월 진주성이 임진왜란으로 함락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왜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당시 12살이었던 그도 포로 속에 섞여 일본으로 끌려간 듯하다.

주로 대판(大阪) 또는 경도(京都) 부근에서 10년 동안의 억류생활을 보냈다. 1600년 9월 세키가하라전투(關ケ原戰鬪)가 일어났을 때에는 도쿠가와(德川家康) 쪽에서 전투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으며, 1601년 6월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포로 중 남녀 250명이 송환되어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그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일본의 풍속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어에도 능통하여, 1609년(광해군 1)에는 역과(譯科)의 왜학(倭學)에 합격하였으며, 전후 다섯 차례에 걸쳐 부산훈도(釜山訓導)에 임명되어 일본과의 통상외교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617년과 1624 · 1636년 역관으로서 연속 세 차례나 일본에 다녀왔는데,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을 데려오는 일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멀고 가까움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닌 사실이 당시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뒤 품계가 가선대부에 이르렀으며, 저술로는 일본어 학습서인 『첩해신어(捷解新語)』 10권을 남겼다. 이 책의 원고가 모두 완성된 시기는 1625년 이후에서 1636년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책이 실제로 간행된 것은 1676년이었다. 1678년부터는 이 책이 사역원 왜학의 과시용 교과서로 쓰였다.

참고문헌

  • - 『통문관지(通文館志)』

  • - 『부상록(扶桑錄)』

  • - 『동사록(東槎錄)』

  • - 『국어학사(國語學史)』(강신항, 보성문화사, 1977)

  • - 『朝鮮語學史』(小倉進平, 日本刀江書院, 1964)

  • - 『捷解新語解題』(森田武, 京都大學文學部編, 1957)

주석

  • 주1

    : 첩해신어 : 捷解新語(한古朝40-4)(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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