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주목사, 강계부사, 의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59년(효종 10) 지평을 거쳐 안후열(安後說) · 김수흥(金壽興) · 남구만(南九萬) 등과 함께 암행어사로 선발되어 전라도에 파견되었다. 그해 지평이 되었으나 패초(牌招: 승지가 왕명을 받아 왕의 명령서를 가지고 신하를 부름)에 나가지 않았다 하여 관직에서 내어 쫓기는 것을 요구하는 김익렴(金益廉)의 탄핵을 받았다.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현종에게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아뢰는 소를 올렸다. 1659년(현종 즉위년) 정주목사로 나가서 강계부사와 의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정주목사 시절에는 부호들이 차지한 전답을 서민들에게 돌려주는 한편, 청나라 사신들의 무리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는 기개를 보였다.
강계부사가 되어서는 백성들의 생활을 위하여 당시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하였던 인삼 채취를 허락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평안감사 민유중(閔維重)의 청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그러한 청조(淸操)가 인정되어 숙종조의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전고대방(典故大方)』
- 『송자대전(宋子大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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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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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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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암행어사로 파견 : 효종실록21권, 1659년(효종 10) 4월 18일. "암행 어사 안후열·김수흥 등을 명소하여 봉서를 주어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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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청백리 녹훈 : 영조실록11권, 1727년(영조 3) 4월 11일. "장령 이응이 성학·세자 보도·기강 확립·정학 존숭·청렴한 관원의 포상 등에 관해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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