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영복리 고인돌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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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영복리 고인돌 발굴모습
강진 영복리 고인돌 발굴모습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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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개설

고인돌은 강진읍과 마량면을 잇는 국도변에 36기가 분포되어 있다. 이 중 13기가 1982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내용

고인돌들은 규모가 큰 것은 길이 4m, 너비 3.5m, 두께 1m 정도의 뚜껑돌을 가지고 그 아래는 둥근 굄돌 4, 5개로 괴었다. 이것은 대표적인 남방식 고인돌의 예로서 그 하부구조의 굄돌 안쪽에 상자모양의 돌널이 있고, 덧널[墓槨]은 잡석이나 할석(割石)으로 짜고, 바닥에는 대부분 자갈돌을 깔고 있다.

돌널 크기는 고인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길이 100∼180㎝, 너비 30∼40㎝, 깊이 30∼60㎝ 정도이다. 긴축(長軸)방향이 모두 남북으로 일치한 가운데 시신의 머리방향이 북쪽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중 돌널 길이가 170㎝ 이상인 한림촌락입구(A지구)의 제6·7·13·14호 고인돌과 바위백이(C지구)라 불리고 있는 제8호 고인돌은 펴묻기의 무덤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A지구 제12호 고인돌과 B지구의 제1호 고인돌의 돌널은 120㎝, A지구 제1·15호 고인돌은 140㎝이며, A지구 제1-1호와 제10-1호 고인돌의 돌널은 100㎝ 정도인 것으로 보아 굽혀묻기거나 세골장(洗骨葬) 또는 어린아이의 무덤으로도 생각된다.

출토유물로는 다량의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조각·검은간토기조각 등의 토기류가 주를 이룬 가운데, 돌살촉·돌끌·대패날·숫돌·돌도끼 등의 석기류와 토제가락바퀴조각·그물추가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부분 고인돌의 하부구조인 매장시설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어서 부장유물로 볼 수는 없다.

A지구의 경우를 예로 들면 가장 거대하고 중심이 되는 제9호 고인돌 동쪽 부근에서 토기와 석기류가 집중적으로 수습되었다. 토기조각은 500여 편이나 되는 많은 양의 민무늬토기가 주로 수습되었다. 10점의 그물추가 출토된 점으로 볼 때 그들의 생활의 일부는 강진만과 관계된 어로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인돌의 연대는 전라남도 지방의 고인돌의 연대가 대개 서기전 3, 2세기에서 서력기원 전후로 추정되고 있고, 또 유구나 출토유물을 비교 검토해볼 때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강진영복리지석묘발굴조사보고서』(서성훈·이영문, 국립광주박물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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