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생.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17세 때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홈실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살던 중, 협률사(協律社)의 공연을 보고 감동하여 집을 나가 장득주(張得周)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질로 몇년 만에 「춘향가」·「수궁가」·「흥보가」를 공부하였고, 서울로 와서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지도를 받아 당시 여류명창으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려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에 임방울(林芳蔚)과 함께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대동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많이 하였다. 1943년 재일동포 위문공연차 일본을 순회하던 중 별세하였다.
그녀의 장기는 「심청가」 중에서 ‘추월만정(秋月滿庭)’,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