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동하던 박원종(朴元宗) 등이 죽이려 하였으나, 영의정 유순(柳洵)의 주선으로 반정군에 나가 목숨을 빌고 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병충분의결책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決策翊運靖國功臣)의 훈호(勳號)를 받고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뒤 대제학 · 공조판서를 거쳐 1512년(중종 7)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어 숭록대부에 올라 우찬성 · 판중추부사에까지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金馹孫)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명리를 지나치게 탐냈다.
특히 연산군 말년 애희(愛姬)의 죽음을 슬퍼한 왕을 대신하여 궁인애사(宮人哀詞)와 제문을 지은 뒤 사림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었고, 반정 후에도 홍문관으로부터 폐조의 행신(倖臣)이라는 탄핵을 받았다. 저서로 『목계일고』가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목계일고(木溪逸稿)』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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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진 급제 : 『성화19년계묘식2월○일생원진사방목(成化十九年癸卯式二月○日生員進士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K 2291.7 1746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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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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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강혼 저술 : 목계일고(木溪逸稿)(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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