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궁제례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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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악원보 / 경모궁 제례악
속악원보 / 경모궁 제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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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비운으로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서 만든 제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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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조가 비운으로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서 만든 제례악.
내용

정조가 비운으로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서 만든 제례악.

악장(樂章)은 1783년(정조 7)에 이휘지(李徽之)가 만들었고, 뒤에 남공철(南公轍)이 개찬하였다. 음악은 <어휴곡 於休曲>·<진색곡 震索曲>·<유길곡 維吉曲>·<혁우곡 赫佑曲>·<독경곡 篤慶曲>·<휴운곡 休運曲>·<휘유곡 徽柔曲>의 7곡만이 ≪속악원보 俗樂源譜≫ 신편(信編)에 보이나, 실제 연주에서는 <제명곡 齊明曲>·<제권곡 帝眷曲>·<유분곡 有芬曲>·<아례곡 我禮曲> 등이 더 많이 연주된다.

이 음악들은 모두 종묘제례악인 <정대업 定大業>과 <보태평 保太平> 가운데에서 발췌하여 줄인 것들이다.

제향 절차와 음악, 그리고 원곡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곡이 종묘제례악에서 나온 것이므로 종묘제례악의 축소형이라 할 수 있겠다. 사용되는 악기는 경모궁악기조성청(景慕宮樂器造成廳)에서 만들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9월에 장악제조(掌樂提調) 서호수(徐浩修)의 청에 의하여 경모궁악기조성청을 두기로 하고, 김한기(金漢耆)와 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제조로 삼았다. 그 이듬해 5월에 악기 조성을 끝냈는데, 감조전악(監造典樂)은 신득린(申得獜)과 임성주(林成柱)였다.

그 때 완성된 악기는 편종(編鐘) 32매(2틀), 편경(編磬) 32매(2틀), 방향(方響) 32매(2틀), 진고(晉鼓) 1부, 절고(節鼓) 1부, 장구(杖鼓) 2부, 어(敔) 2부, 당비파(唐琵琶) 1부, 향비파(鄕琵琶) 1부, 현금(玄琴) 1부, 가야금(伽倻琴) 1부, 아쟁(牙箏) 1부, 생(笙) 2부, 훈(壎) 2부, 태평소(太平簫) 1부, 해금(奚琴) 1부, 피리 2개, 대금(大笒) 2개, 당적(唐笛) 2개, 퉁소(洞簫) 1개, 지(篪) 1개, 둑(纛) 2부, 노도(路鼗) 1부, 휘(麾) 1부, 조촉(照燭) 1부, 대금(大金) 1좌, 박(拍) 2부, 무적(舞翟) 36개, 무약(舞籥) 36개, 목검(木劒) 12개, 목창(木槍) 12개, 죽궁(竹弓) 12개, 죽시(竹矢) 12개, 복두(幞頭)·의대(衣帶)이다.

이 악기들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정대업>의 제도를 본뜬 것이다. 편종·편경·축·어와 같은 아악기가 있는가 하면, 방향·(당)피리와 같은 당악기가 있고, 대금·아쟁·거문고·가야금·해금·아쟁·장구·태평소와 같은 향악기도 많이 섞여 있다.

즉, 아악기와 당악기 및 향악기의 혼합 편성으로 종묘제례악의 편성과 같다. 일무(佾舞)는 6일무로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각각 36인씩 편성되어 있었다. 악보는 ≪속악원보≫에 전한다.

경술국치 이후로는 연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까지도 이왕직 아악부 아악사들의 교육과정으로 반드시 익히게 되어 있었다. 현재는 연주되는 일이 없으나, 국립국악원이 1975년에 제작한 레코드 <한국음악선집> 제4집에 이 음악을 수록한 바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경모궁의궤』
『속악원보(俗樂源譜)』
『국악개요』(장사훈, 정연사, 1961)
『국악총론』(장사훈, 정음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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