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DK관현악단이라고도 한다. 홍난파(洪蘭波)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창단 당시 약 20인조의 현악기와 목관악기 일부가 중심이 되어 방송과 연주활동을 하였다. 당시 홍난파는 지휘·편곡 등을 맡았다.
그 이전 1929년 중앙악우회(中央樂友會)가 민간관현악운동의 효시로서 활동하였지만 직업적인 관현악단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처음이다. 방송에서 연주한 곡목들은 레하르의 「금과 은」, 로자스의 「파도를 넘어서」 등이었다.
1939년에는 전조선창작음악제에 홍난파·채동선·임동혁 등의 관현악작품을 연주해서 우리나라 창작음악 연주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홍난파의 연가곡 「나그네의 마음」은 이 관현악단이 있었기 때문에 창작될 수 있었다.
1940년 홍난파가 죽은 뒤에는 계정식(桂貞植)이 지휘를 맡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의 시대상황은 이 관현악단의 존속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관현악단은 우리들에게 방송을 통해서나마 관현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과 이를 통해 당시 음악활동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현악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이 관현악단을 통해 배출된 인사로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휘자인 김생려(金生麗)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