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부산첨사를 지낸 김호(金虎)의 고택이다. 집의 배치는 널따란 마당에 一자형의 안채가 남향하여 있고 서쪽에는 아래채가 동향하여 있다. 원래 사랑채가 동쪽에 있었다는데, 없어지고 자리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자리 북쪽으로 사당(祠堂)이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크기로, 서쪽 끝에 2칸의 부엌을 두고, 부엌 오른쪽에 1칸의 온돌방으로 된 안방이 있다. 그 오른쪽에 1칸의 대청, 그리고 마지막으로 1칸의 머릿방을 둔 단순한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동향하여 있는데, 남쪽 끝에 1칸의 온돌방, 그 다음 또 1칸의 온돌방을 두고, 그 옆에는 부엌을 두었다.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간좌곤향(艮坐坤向)으로 따로 담장을 한 속에 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단순하며, 내부는 모두 하나로 된 통간(通間)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터의 기단 아래에는 우물이 있고, 부엌 서쪽 담장 밑에는 장독대가 있다.
이 집의 구조는 안채는 막돌로 바른층쌓기한 뒤 장대석으로 갑석을 놓아 마무리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도리를 받친 납도리집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수키와 끝에 아귀토를 물렸다.
부엌간의 담벼락은 빈지벽이고 살창을 대었다. 방과 대청에는 띠살무늬 분합을 달았다. 방의 바닥은 온돌이나,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을 한 것이 특이하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연등천장을 하였다.
아래채는 막돌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아, 가는 네모기둥을 세운 단순한 초가집으로 굴뚝이 부뚜막에 설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당은 막돌바른층쌓기 기단 위에 주좌(柱坐)를 쇠시리한 초석들을 놓고 민흘림두리기둥을 세운 굴도리집이다. 전면 3칸 모두 당판문을 달았는데, 어간(御間)만 정자살창을 윗부분에 끼웠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며, 양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달았다. 마당가에 있는 우물 돌은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이 집에서 주목할 점은 처리한 기법들이 고식(古式)이라는 점과 고방(庫房) 앞에 문짝을 달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래채 굴뚝이 부엌의 부뚜막에 있다는 남방식 요소의 특징과 함께 이 집을 지정하게 된 학술적인 가치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상청(上廳)에 문짝을 다는 예는 안동지방 북쪽에서는 드물게 발견된다. 안동시 녹전면 일대가 북방의 한계선인 듯이 보이는데, 이런 집들은 경주, 월성 일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런 집들 중에서 고식을 보이는 유례(類例)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