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궁부인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의 제4대 왕, 광종의 왕비.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개성
주요 관직
왕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의 제4대 왕, 광종의 왕비.
개설

혜종의 딸이며 어머니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성을 따라 임씨(林氏)로 칭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광종은 이복누이인 대목왕후(大穆王后)를 제1왕후로 맞아들여 고려왕실에서는 처음으로 왕족간 근친혼의 단서를 열었으며, 다시 제2비로 경화궁부인을 맞아들인 것이다.

혜종과 광종은 이복형제이므로 광종과 경화궁부인과의 관계는 숙질관계가 된다. 이들의 혼인이 맺어지게 된 데에는 혜종대의 정국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가 왕의 아우인 왕요(王堯: 정종)와 왕소(王昭: 광종)를 반역의 혐의가 있다고 참소하자 혜종은 아우에 대한 신뢰의 표시 및 동생들의 실력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조처로, 자신의 딸인 공주를 둘째 아우인 왕소에게 출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으로의 해석이 필요할 듯한데, 이미 왕족내혼을 통하여 왕실에서의 위치가 확고하게 된 동생 왕소에게 자기의 공주를 출가시킴으로써 혜종 자신의 신변안전을 도모하고, 더불어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의 소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처럼 빈약한 혜종의 왕권이었기 때문에 경화궁부인은 왕의 공주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왕후 아닌 부인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왕실족내혼연구』(정용숙, 새문사, 198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