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봉가이(鳳加伊). 조영길(趙英吉)의 딸이며, 어머니는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중(侍中) 이인임(李仁任)의 노비였다.
고려의 법제에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이 있으므로 봉가이도 바로 이인임의 노비 신분이었으나 이인임이 덕비를 1384년(우왕 10) 6월 후궁으로 들여보내 덕비로 봉하게 된 뒤로부터, 우왕은 이인임부처를 어버이처럼 대하고 이인임은 우왕을 사위로 대접하였다고 하니, 덕비에 대한 왕의 총애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우왕의 제4비 숙비와 서로 총애 다툼을 벌였으며, 그 결과 숙비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였다. 우왕의 총애가 깊어짐에 따라 덕비의 아버지인 조영길의 관직도 따라서 승진되었는데, 전농부정(典農副正)에서 밀직부사(密直副使)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축출된 뒤 이들도 왕비의 자리에서 축출되어 사가로 내쫓기게 되었다. 그리고 우왕과 창왕은 신돈(辛旽)의 후손이라 하여 위조(僞朝)로 폄하됨에 따라 우왕은 반역열전에 수록되었으며, 왕비들은 『고려사(高麗史)』 후비전에 입전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