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洞州: 지금의 황해도 서흥) 사람이며 대광(大匡) 김행파(金行波)의 딸이다. 김씨성은 태조가 내린 것이다.
태조는 고도(古都) 평양이 황폐화하여 여진인들의 수렵장이 되므로, 여기에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고 대도호부를 설치하였다가 다시 서경(西京)으로 승격시켰으며, 922년(태조 5)에는 김행파를 비롯한 양가 자제를 이주하게 하여 이곳 백성들을 지도하도록 하였다.
그 뒤 태조는 여러 차례 서경에 행차하였는데, 한 번은 김행파가 무리를 거느리고 길에 나와 태조를 뵙고 자기 집에 가서 유숙하기를 청하여, 두 딸로써 각각 하루밤씩 태조를 모시게 하였다.
이후 태조가 서경행차를 하지 않게 되자 자매는 정절을 지켜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소식을 들은 태조는 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불러 위로하였다.
서경에 명하여 성 안에 대서원과 소서원의 두 사원을 지어 전민(田民)을 두고 각각 살게 하였으므로 사원의 이름을 따서 왕비명을 부르게 된 것이다. 고려 태조의 혼인이 지방 세력가의 요청에 의하여 맺어지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