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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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개념
장수왕대 이후 멸망 때까지 사용한 고구려의 후기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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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장수왕대 이후 멸망 때까지 사용한 고구려의 후기 국호.
내용

그러나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개칭되었음이 당시의 금석문이나 당시의 역사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1979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발견된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의 첫줄에 “五月中高麗太王祖王(5월중 고려태왕조왕)”이라 하여 국명이 ‘고려(高麗)'로 기록되어 있다. 또 539년으로 추정되는 연가7년명불상 광배의 기록에 “高麗國樂良東寺(고려국낙량동사)”라고 하여 고려라는 국호가 쓰여 있다.

중국 역사서에는 태연(太延) 원년(435, 장수왕 23)에 고려에서 사신을 파견했다고 ≪위서≫ 본기에 기록된 이후 계속 고려로 기록이 되고 있다.

또한 ≪남제서≫·≪주서≫·≪수서≫·≪당서≫ 등에서 고구려 열전의 명칭이 ‘고려전(高麗傳)’으로 바뀌어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모두 고려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고려로 기록한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왕력에서는 신라, 고려, 백제로 전체의 국명을 고려로 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록을 고려로 칭하고 있다. 또한 당시에 기록된 ≪양고승전 梁高僧傳≫ 등의 불교전적에서도 고려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 문헌에서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기록된 연대 중 가장 시기가 앞선 것은 398년(광개토대왕 8), 423년(장수왕 11), 435년(장수왕 23)년의 기록이 찾아지고 있으나 확실한 자료는 435년으로 판단된다. 국호의 개칭은 427년(장수왕 15)에 있었던 평양 천도와 관련이 깊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
『위서(魏書)』
『남제서(南齊書)』
『수서(隋書)』
『당서(唐書)』
『자치통감(資治通監)』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日本書紀)』
「고구려의 고려국호에 대한 일고」(정구복, 『역사와 담론』 19·20합집, 호서사학회, 1992)
「주몽고려, 궁예고려, 왕건고려, 코리아의 단절과 계승」(조경철, 『역사와 현실』 109, 2018)
집필자
정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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