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던 조선인 발명가들을 보호 육성하여 이들의 발명활동을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조선물산장려회 측은 조선인 발명가들의 발명품을 조선인 자본을 이용해 산업화함으로써, 당시 조선 경제를 지배하던 일본의 자본과 상품에 대항하여 민족 산업을 육성하려 하였다.
1928년 12월 21일 조선일보 사옥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9인의 이사를 선출하였다. 이사에는 명제세(明濟世), 정세권(鄭世權), 백홍균(白泓均), 이준열(李駿烈), 박길룡(朴吉龍), 김용관(金容瓘) 등 당시 조선물산장려회의 주요 인물들이 포함되었다. 이중 김용관, 박길룡, 이준열은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기술자들로서 1920년대 초부터 민족 기술의 진흥을 위해 노력해 오던 인물이었다.
설립 이후 고려발명협회는 김용관 등 기술자들의 주도하에 발명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강연회 개최, 조선인 발명가들의 특허 수속 원조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1932년 김용관과 박길룡이 독립하여 발명학회(發明學會)라는 독자적 발명 진흥 단체를 운영하게 되면서 고려발명협회의 활동은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발명협회는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운동가들이 과학기술 진흥 사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사례이다. 또한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하고 주도한 민족운동이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1930년대 중반 김용관과 박길룡의 주도 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발명학회의 발명진흥사업과 과학대중화운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