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조선 ()

과학조선
과학조선
과학기술
문헌
문화재
1933년에, 발명학회에서 김용관 · 박길룡이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 기술 대중 잡지.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명칭
과학조선(科學朝鮮)(2013-1)(科學朝鮮(2013-1))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유산청 국가등록문화유산(2013년 08월 2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0 (신촌동, 연세대학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과학조선》은 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기술 대중잡지이다. 1930년대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다.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월간으로 발행되었다. 자금 사정과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부터 속간되어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의
1933년에, 발명학회에서 김용관 · 박길룡이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창간한 과학 기술 대중 잡지.
개설

1930년대 김용관(金容瓘), 박길룡(朴吉龍) 등 발명학회(發明學會)와 과학지식보급회(科學智識普及會)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으며, 발명 및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과학기술 지식을 대중에 보급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인 발명가들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김용관, 박길룡, 이인(李仁) 등이 설립한 발명학회는 1933년 6월 학회의 기관지로 『과학조선』을 창간하였다. 창간 초기에는 발명가들에게 발명활동을 돕기 위한 실용적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전반에 발명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지만, 1934년 발명학회를 주도로 한 과학대중화 사업이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과학조선』의 성격도 점차 대중적 과학잡지로 변모하였다. 1934년 7월 과학대중화 운동을 전담할 기관으로 과학지식보급회가 설립된 이후 『과학조선』의 간행 주체는 발명학회에서 과학지식보급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서지적 사항

『과학조선』의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발행하여 대부분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회원에게 배포되었다. 월간지로 간행되었지만,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 과학운동에 대한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에 간행되지 못하거나 오랜 기간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1936년 이후 1939년까지는 거의 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조선』은 일제의 군국주의가 본격화된 1939년부터 속간되기 시작하여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1933년 창간호부터 1936년까지 4년간 간행된 11책의 『과학조선』은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연구소의 편찬으로 과학세기사(科學世紀社)에서 영인 간행된 바 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용

『과학조선』의 편집진과 필진에는 당시 과학운동을 주도했던 기술자, 발명가들을 비롯해서 당시의 저명한 문인, 종교인, 정치가를 망라했다.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주도자였던 김용관, 박길룡을 비롯해서 안동혁(安東赫), 윤주복(尹柱福)과 같은 과학기술자, 심승택과 같은 발명가, 현상윤(玄相允), 김동성(金東成), 이인, 김창제(金昶濟), 이춘호(李春昊)와 같은 사회 명사가 기사를 썼다.

필진의 다양성을 반영하듯, 기사의 내용도 발명과 특허에 관한 전문적 기사를 비롯해서, 화보, 과학상식, 생활과학, 공상과학소설과 같이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대중적 기사들, 민족의 근대화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려는 계몽적 기사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했다. 1939년 속간 이후에는 당시의 군국주의적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제의 정책에 편승하는 내용, 일본어로 된 기사들도 많이 실렸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는 한국 사회에 현대 과학의 지식이 보급되고,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일제 당국 및 일본인들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용관, 박길룡이 주도한 과학기술 진흥운동과 그 대변지였던 『과학조선』은 한국인들의 주도하에 과학기술을 진흥하고 대중화하려 한 노력을 대표한다. 『과학조선』은 한국 지식 사회에 과학기술 지식을 널리 보급했으며,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는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참고문헌

임종태, 「김용관의 발명학회의 1930년대 과학운동」(『한국과학사학회지』 17-2, 1995)
현원복, 「1930년대의 과학기술진흥운동」(『민족문화』1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7)
백순재, 「과학기술잡지의 역사적 고찰(상·하)」(『과학과 기술』 1,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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