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1919년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수(建築技手)로 들어가, 당시 시공중이던 조선총독부청사 감독에도 참여하는 등 기량을 닦았다. 1932년 건축기사(建築技師)로 승진하였으나 곧 관직을 사직하였다.
같은 해 7월종로구 관철동에 박길룡건축사무소를 개설하여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한국인 건축가들의 유대강화에 힘썼다. 1938년 사단법인 조선건축회(朝鮮建築會) 이사가 되었고, 1941년 경기도 건축대서사(建築代書士, 현 건축사협회) 조합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조선주택영단에 참여하였고, 194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1943년 조선수리조합회 건축사무 촉탁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최초로 서구식 건축술의 전문교육을 받은 건축가였다.
그의 작품경향은 합리주의적 형태이면서도 경박한 모더니즘을 따르지 않는 중후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경성제국대학 본부(1931)·동일은행 남대문지점(1931)·한청빌딩(1935)·경성여자상업학교 교사 및 강당(1937)·혜화전문학교 본관(194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