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5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으나, 재학중 3·1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재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바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수(建築技手)로 들어가 많은 업무를 담당하여 기량을 닦았으며, 1936년 기사(技師)로 승진하였다.
1938년 관직을 사직하고 그 다음해 태평건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인 1932년경부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본관과 도서관의 설계를 시작으로 많은 교육시설을 설계하였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로는 조선일보사옥(1933∼1934)·아서원(1934)·오산중학교(1935∼1936)·중앙중학교(1936∼1937)·명신중학교(1937∼1939)·대전지방법원(1939) 등이 있다.
광복 후 1950년 태평건물주식회사 사장직을 사임하고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 청구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53년 박동진건축연구소를 개설하였다. 1960년 기신건축연구소(紀新建築硏究所)로 발전시켜 계속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국건축가협회의 초청으로 1964년 4월부터 1년간 미국 및 유럽의 건축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의 작품은 근대 합리주의적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석조의 고딕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보성전문학교 본관(1933∼1934)·평안공업학교 본관(1940)·영락교회(1946)·경성여자상업학교 별관(1947)·남대문교회(1955)·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1955) 및 서관(195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