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영락교회, 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 및 서관 등을 신축한 건축가.
내용
1938년 관직을 사직하고 그 다음해 태평건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인 1932년경부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본관과 도서관의 설계를 시작으로 많은 교육시설을 설계하였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로는 조선일보사옥(1933∼1934)·아서원(1934)·오산중학교(1935∼1936)·중앙중학교(1936∼1937)·명신중학교(1937∼1939)·대전지방법원(1939) 등이 있다.
광복 후 1950년 태평건물주식회사 사장직을 사임하고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 청구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53년 박동진건축연구소를 개설하였다. 1960년 기신건축연구소(紀新建築硏究所)로 발전시켜 계속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국건축가협회의 초청으로 1964년 4월부터 1년간 미국 및 유럽의 건축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의 작품은 근대 합리주의적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석조의 고딕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보성전문학교 본관(1933∼1934)·평안공업학교 본관(1940)·영락교회(1946)·경성여자상업학교 별관(1947)·남대문교회(1955)·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1955) 및 서관(1956)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 -건축편(建築篇)-(동화출판공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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