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영락교회, 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 및 서관 등을 신축한 건축가.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3·1운동
  • 사망 연도198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9년(고종 36)
  • 출생지평안북도 정주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일주 (전 성균관대학교, 건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영락교회, 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 및 서관 등을 신축한 건축가.

내용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5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으나, 재학중 3·1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재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바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수(建築技手)로 들어가 많은 업무를 담당하여 기량을 닦았으며, 1936년 기사(技師)로 승진하였다.

1938년 관직을 사직하고 그 다음해 태평건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인 1932년경부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본관과 도서관의 설계를 시작으로 많은 교육시설을 설계하였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로는 조선일보사옥(1933∼1934)·아서원(1934)·오산중학교(1935∼1936)·중앙중학교(1936∼1937)·명신중학교(1937∼1939)·대전지방법원(1939) 등이 있다.

광복 후 1950년 태평건물주식회사 사장직을 사임하고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 청구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53년 박동진건축연구소를 개설하였다. 1960년 기신건축연구소(紀新建築硏究所)로 발전시켜 계속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국건축가협회의 초청으로 1964년 4월부터 1년간 미국 및 유럽의 건축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의 작품은 근대 합리주의적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석조의 고딕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보성전문학교 본관(1933∼1934)·평안공업학교 본관(1940)·영락교회(1946)·경성여자상업학교 별관(1947)·남대문교회(1955)·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1955) 및 서관(1956)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 -건축편(建築篇)-(동화출판공사,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