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돌 · 벽돌 혼합 조적조(組績造) 건물이다. 1922년 6월에 짓기 시작하여 1925년 9월에 준공하였다. 설계는 일본인 츠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하였다고 전한다.
건물은 서양에서 18세기 이래 유행하였던 절충주의 양식을 따랐다. 제국주의 침략 세력의 상징으로 건립된 건물은 대체로 국적이 없는 절충주의 양식을 보이는데, 서울역사도 일제가 조선과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세운 건물이므로 절충주의 양식을 갖추었다. 곧 역사는 근대 이후 산업화와 철도의 발달에 의해서 건립되었지만, 옛 건물인 궁전이나 교회 건물의 여러 요소를 변형시킨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1층은 르네상스 궁전이나 관청 건물인 팔라초(palazzo)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면을 거칠게 다듬는 수법〔rustication〕으로 화강석을 다듬어 마치 기단(基壇)과 같이 마감하였다. 1층 윗부분과 2층은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각 층을 나누는 분할선과 벽 모서리에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였다. 건물의 가운데에는 큰 홀을 두었고, 그 앞쪽에는 2층 높이의 큰 현관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입구로 삼았으며, 홀의 좌우에는 2층 높이의 곁채를 연결하고서 다시 2층 건물을 덧붙였다.
현관의 지붕은 둥글게 올린 궁륭(穹窿, vault) 구조인데, 앞면에 낸 큰 창의 가운데에는 입체적으로 만든 제단인 애디큘라(aedicula) 모양의 감실을 만들고서 시계를 달았다. 지붕의 좌우에는 채광창(採光窓)이 툭 솟아오른 탑을 세운 뒤, 그 위에 돔(dome) 모양의 구리판 지붕을 덮었다. 하지만 가운데의 거대한 돔에는 채광창을 두지 않고 비잔틴 양식에서 보이는 기둥인 펜던티브(pendantive)와 돔을 결합시켜 놓았으며, 지붕은 천연 슬레이트와 동판(銅板)으로 처리하였다.
공사비는 모두 94만 5,000원이었는데, 경비가 모자라 원래의 설계안을 축소하여 지었다고 전한다. 1982년∼1983년에 내부를 수리하는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일부분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사인 이 건물은 현재 공연이나 전시회를 개최하는 문화복합공간인 ‘문화역서울 284’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