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과학지식 보급단체.
개설
‘과학의 생활화’를 강령으로 내세운 이 단체는 회장에 윤치호(尹致昊), 부회장에 이인, 이사에 박준호(朴準鎬)·김용관·유억겸(兪億兼), 간사에 정인관(鄭寅寬), 보급위원에 이훈구(李勳求)·최규동(崔奎東)·현상윤(玄相允)·윤일선(尹日善)·이하윤(異河潤)·이헌구(李軒求)·주요한(朱耀翰), 연구위원에 이극로(李克魯)·이춘호(李春昊)·안동혁(安東赫)·이만규(李萬珪)·이채호(李采鎬)·조복성(趙福成)·최윤식(崔允植), 재정위원에 신태악(辛泰嶽)·오윤선(吳胤善)·박흥식(朴興植)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하여 임원진을 구성하였고, 평양·원산·신천·김천 등을 포함한 전국적인 지부를 구성하여 과학대중화사업을 전개하였다.
기능과 역할
또 과학도서의 편찬과 발간, 각급 학교의 자연과학교과에 관한 조사, 과학대중화방법에 관한 조사, 과학 표본의 제작·판매·취급대리, 과학종합지인 ≪과학조선≫ 발행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가 주관한 과학대중화운동은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등 민족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각계의 거족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차차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단체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여, 1938년 제5회 과학의 날 행사에서 이 운동을 주도한 실무책임자 김용관을 체포·투옥함으로써 점차 쇠락하였고, 1930년대 말에는 그 명칭도 과학보급협회로 바뀌어 과학의 날에도 소규모의 견학단을 조직하는 정도에 그쳤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민족의 과학기술운동」(박성래, 『한국과학사』, 한국방송사업단, 1982)
- 「과학데이회와 그 사업」(동아일보, 1934.3.5.)
- 「과학과 조선」(조선일보, 1934.3.5.)
- 「문화운동에 도움」(조선중앙일보, 1934.3.5.)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목돈상, 중앙일보, 1972.1.13.)
- 「나의 이력서」(이인, 한국일보, 1973.3.24.)
- 「1930년대의 과학기술진흥운동」(현원복, 『민족문화』 1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7)
- 「참연신유록」(안동혁, 『한국과학사학회지』 2-1,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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