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문집 ()

고산문집
고산문집
유교
문헌
1883년, 학자 임헌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고산선생문집(鼓山先生文集), 고산집(鼓山集)
문헌/고서
간행 시기
1883년
저자
임헌회(任憲晦)
편자
전우(田愚)
권책수
24권 13책
권수제
고산선생문집(鼓山先生文集)
판본
목활자본
표제
고산집(鼓山集)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고산문집』은 1883년 학자 임헌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임헌회의 문인 전우에 의해 간행되었다. 원집 20권과 속집 4권으로 구성되며 시, 소, 서, 잡저, 비지, 행장, 전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사직소와 명덕론 논변, 학문에 대한 면려, 의리와 충절을 강조한 전 등을 통해 그의 출처관과 시국관, 학문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집은 19세기 기호유림의 사상과 현실 인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의
1883년, 학자 임헌회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저자 임헌회(任憲晦: 1811~1876)는 조선 후기 문신 · 학자로,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 · 전재(全齋) · 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 · 홍직필(洪直弼) 등의 문인이며, 호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주요 편자 전우(田愚: 1841~1922)는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 추담(秋潭) · 간재(艮齋)이다. 임헌회(任憲晦)의 문인이다.

서지사항

『고산문집(鼓山文集)』은 원집 20권 10책, 속집 4권 3책으로 총 24권 13책의 목활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임헌회의 문인 전우 등이 1877년 연보 편찬에 대해 논의한 뒤 1878년 문집을 교정하고 1880년 전우가 가장을 완성했다. 이어 1883년 원집 20권과 속집 10권을 간행했다. 1937년 초간본에 수록된 시와 서(書), 잡저 일부를 산삭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중간했다. 서명은 『전재선생문집(全齋先生文集)」이며 12책이다. 1985년에는 원집, 속집, 「전재선생예설(全齋先生禮說)」, 「오현풍아(五賢風雅)」, 「오현수언(五賢粹言)」, 「전재연보(全齋年譜)」 등을 합하여 『임헌회전집(任憲晦全集)』 5책으로 영인했다.

구성과 내용

서발은 없고 권두에 총목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원집 권1에 부(賦) 3편, 사(詞) 1편, 시 160제 206수, 시여(詩餘) 4편이 실려 있다. 권2에는 소(疏) 17편, 계(啓) 21편, 의(議) 5편이 실려 있다. 권37에는 서(書) 363편이 실려 있다. 권8에 잡저 22편, 권9에 서(序) 15편, 기(記) 11편, 제발(題跋) 26편, 명(銘) 8편, 찬(贊) 6편이 실려 있다. 권10에 혼서(昏書) 2편, 상량문 2편, 고축(告祝) 24편, 제문 19편이 실려 있다. 권1115는 비지류로 신도비명 2편, 비 5편, 묘갈명 22편, 묘지명 38편, 묘표 4편, 시장(諡狀) 1편이 실려 있고, 권16~18에는 행장 26편, 권19에는 유사 6편, 어록 3편이 실려 있다. 원집의 마지막인 권20에 전(傳) 15편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의 권1에 시 16수, 소 1편, 서(書) 38편, 잡저 25편, 서(序) 6편, 기 12편, 제발 19편, 잠 3편, 명 10편, 찬 2편, 혼서 1편, 상량문 1편, 고축 2편, 제문 4편이 실려 있다. 권2~4에는 신도비 1편, 묘갈명 30편, 묘지명 20편, 묘표 3편, 시장 1편, 행장 9편, 전 3편이 실려 있다.

등은 학문에 대한 면려와 이취를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는 35세에 지은 작품이다. 과거 공부 대신 학문에 전념할 것을 결심한 자신의 출처관을 도잠(陶潛)의 「귀거래사」 체제를 본받아 지은 것이다. 「어불수조(魚不受釣)」는 낚시밥을 받아먹지 않으면 잡힐 리 없고, 삼킨 물을 다시 토해내는 물고기의 생태를 빌어 은연중 자신의 처세관을 빗댄 시로 자신의 삶에 대한 경계와 면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이 밖에 이이, 주자, 도잠 등의 시에 차운하거나 집구(集句)한 시도 상당수 있다.

는 대부분 사직소이다. 격동기에 유자(儒者)로서 저자의 시국관이 어떠했는지 살필 수 있다. 「사이조참판겸진소회소(辭吏曹參判兼陳所懷疏)」는 이조 참판을 사직하며 고종에게 뇌변(雷變)이 있었으니 더욱 경계하여 국정을 살필 것을 건의한 글이다. 계는 모두 별유후서계(別諭後書啓)이다. 의 「당저사위후중궁전진호위대비전의(當宁嗣位後中宮殿進號爲大妃殿議)」 · 「대왕대비왕대비복제의(大王大妃王大妃服制議)」 등은 국가 의례에 관한 자문에 답한 내용이다.

서(書)는 그의 스승인 송치규 · 홍직필을 위시하여 김매순(金邁淳) · 홍석주(洪奭周) 및 사우(士友) 조병덕(趙秉悳) · 신응조(申應朝) · 홍일순(洪一純) · 김평묵(金平默) · 이응진(李應辰) · 소휘면(蘇輝冕), 그리고 문인 전우 · 서정순(徐政淳) · 윤치중(尹致中) 등과 주고받은 것으로, 주로 경전 · 예설(禮說) · 성리설 · 태극 · 심성(心性) · 이기(理氣) 등에 관한 논술이 많다.

조병덕에게는 이현일(李玄逸)과 그 당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고, 또 『맹자』의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해 “생한 것을 성(性)이라고 이른다는 말은 대체로 생하기 전에는 성을 말할 수 없으며, 생이 있는 후에야 비로소 성이라 말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김평묵과 주고 받은 편지는 ‘명덕(明德)’에 대한 기본적 견해가 명덕주기설(明德主氣說)과 명덕주리설(明德主理說)로 차이를 나타내면서 새로운 학파적 논변으로 발전되었다. 임헌회가 명덕을 심(心)으로 파악한 점은 화서학파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임헌회는 “명덕이 중리(衆理)를 갖추고 있으며 만사(萬事)에 응한다.”는 점을 심(心)의 체(體)와 용(用)으로 파악했다. 그리하여 그는 심(心)을 이(理)로 파악하는 김평묵 등의 논의는 기(氣) 위에 나아가 이(理)를 파악하지 않고, 오로지 명덕에 갖추어져 있는 이(理)와 명덕의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상태를 함께 이(理)로 파악하는 모순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현영익(玄永益)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춘추』와 「백이전」 및 『사략』의 글들에 대한 문목들에 답하고, 장계훈(張啓勳)에게 답하는 편지에서는 태극도설의 동정음양(動靜陰陽)에 대해 그림을 인용해 가며 설명하는 등 예설과 학문에 대한 물음에 답하거나 설명하는 내용과 학문을 면려하는 내용의 편지가 다수 있다.

「이계(二誡)」는 부모의 상례를 성(誠)과 경(敬)으로 하고, 남녀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 가도(家道)를 바르게 하라는 내용이고, 「시아배(示兒輩)」는 일상생활에 근신해야 할 조목을 자식들에게 언급한 글이다. 「예의쇄록(禮儀瑣錄)」은 당시 시행되고 있던 상제례(喪祭禮)에서 의심나는 점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논한 것이며, 「제찬도설(祭饌圖說)」은 우제(虞祭) · 시제(時祭) 등 제사 음식에 대한 해설과 도식이다.

「간서잡록(看書雜錄」은 김수항(金壽恒), 송준길(宋浚吉), 조목(趙穆) 등 선현들의 언행 가운데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뽑아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경의쇄록(經義瑣錄)」은 경전상의 난해한 어구에 대하여 제현의 설을 인용하고 고증 · 분석했다. 「서천지간문자권후시간아(書天地間文字卷後示艮兒)」는 5세의 어린 나이에도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아들에게 주는 「천지간문자(書天地間文字)」 뒤에 붙인 발문으로, 임헌회가 견지한 존주대의론과 대청의식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글이다.

「여사한산이씨전(女士韓山李氏傳)」은 사위가 역도가 되어 장모에게 인사를 오자 단도를 꺼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국가에 대한 여성의 충심을 여사(女士)라는 말에 담아낸 글이고, 「화망건선생전(畫網巾先生傳)」은 명나라가 멸망한 뒤 춘추대의를 지켜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망건선생의 일화를 기록한 글로, 조선 후기 위정척사론자(衛正斥邪論者)의 대명관(對明觀)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의의 및 평가

이 문집은 임헌회의 사상과 시국관 · 출처관 등, 19세기 당시 기호유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전북 선현 문집 해제 1』(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전주분원·호남고전문화연구원, 2003)
『임헌회전집 1』(아세아문화사, 1985)

논문

유지웅, 「고산 임헌회의 심론」(『유학연구』 40,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7)
권오영, 「임헌회와 그 학파의 사상과 행동」(『한국학보』 25, 일지사, 1999)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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