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27년, 조선 후기 학자 전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전우는 주자학적 성리학을 계승하며 ‘심본성설(心本性說)’을 주장, 성이 천리이고 마음은 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통해 주희(朱熹)의 학설을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이이와 송시열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도학을 통한 국권 회복을 강조했다.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의병 참여나 적극적 독립운동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그의 성리학적 공헌은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 유학의 마지막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서지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저자 사후 자손들과 제자들이 문집 간행에 대해 논의했으나, 간행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저자인 전우가 생전에 자손들과 문인들에게 “일제(日帝)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문집을 간행하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대외적 상황이 악화되면서 제자들 사이에서는 스승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문집 간행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결국 저자의 문집은 몇 종으로 나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저자의 제자 가운데 최병심(崔秉心: 1874~1957)과 김택술(金澤述: 1884~1954)은 정리된 전우의 원고를 필사하기로 했다. 1924년 7월에 필사를 마쳐, 전고 13책, 후고 12책, 재후고 3책, 별고 1책 등 총 29책으로 구성된 『간재사고』[화도 수정본]를 완성했다. 이어 1925년 10월에는 오진영과 권순명(權純命) 등이 진주(晉州)에서 활자를 사용해 『간재사고』[진주본] 30책을 간행했는데, 이 판본이 저자 문집의 초간본이다.
이와는 별도로 1925년 겨울부터 저자의 장손 전일효(田鎰孝)와 손녀사위 이인구(李仁榘)가 문집 간행을 준비하여, 1927년에 논산(論山) 용동(龍洞)에서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했다. 이 목판본이 『간재집』[용동본]이다.
구성과 내용
『간재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간문[편지글]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실제도 문집의 편집에서도 서간문을 의도적으로 앞에 배치하고, 여타 시문은 그 뒤에 실었다. 이는 저자가 서간을 통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현실을 논하고, 학문적 주제를 깊이 있게 교류했던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책에는 스승, 동문, 문인들과 주고받은 4,000여 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성리학 논변, 경전 해석, 예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학문적 논쟁과 교류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임헌회(任憲晦), 조병덕(趙秉悳), 신응조(申應朝), 유중교(柳重敎), 김평묵(金平默) 등과의 서신은 저자의 성리학적 이념 실천과 학문적 깊이를 잘 보여 준다. 전우의 편지글은 단순한 사적 교류를 넘어, 그의 학문적 발전 과정과 시대적 책임감을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는 서신을 통해 성리학의 핵심 주제인 성(性)과 심(心)의 관계, 예학적 문제, 경전 해석 등에 대해 깊은 논의를 이어가며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정립하기도 했다. 이는 구한말 학문적 교류 방식과 성리학적 논쟁의 일면을 잘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다.
잡저는 총 500여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성리학적 주제에 대한 연구와 비판적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주요 문체로는 변(辨), 설(說), 논(論), 문답(問答) 등이 있으며, 이는 특정 학술 주제에 대한 저자의 논리적 견해를 담은 논변류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는 기정진의 유리론(唯理論)을 비판한 「외필변(猥筆辨)」, 이항로의 명덕설(明德說)을 반박한 「화서아언의의(華西雅言疑義)」, 이진상의 심즉리설을 비판한 「이씨심즉리설조변(李氏心卽理說條辨)」 등이 있다. 이들 논변을 통해 저자의 학문적 입장과 성리학 내 논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성리학에서 성(性)과 심(心)의 관계를 해석하며,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과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을 주장했다. 「성존심비적거(性尊心卑的據)」에서는 공자와 주자의 학설에 근거하여 성품을 높이고 마음을 낮춘다는 논리를 전개했고, 「성사심제독계어(性師心弟獨契語)」에서는 성을 스승, 심을 제자로 비유하여 성리학적 체계를 정립하고자 했다. 또한, 「기질체청설(氣質體淸說)」에서는 기질이 청수하다는 논리를 펼쳤으며, 이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한 낙론계 학설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저자의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는 상소문이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그는 「인변란소(因變亂疏)」라는 제목의 상소와 그 후속 상소를 올려,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매국노로 규정하고 이들을 처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러한 상소문은 저자의 민족적 책임감과 일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잘 보여 주며, 성리학적 학문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에 나섰던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문집 전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은 작지만, 저자는 전통적인 시문 창작에도 능했다. 서(序), 기(記), 명(銘), 제문(祭文), 행장(行狀) 등 다양한 문체의 한문 산문을 남겼고, 200여 수의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간재집(艮齋集)』
논문
- 이준규, 「『간재집』과 간재학파 문집 체제의 특징과 그 의미」(『동양한문학연구』 58, 동양한문학회, 2021)
- 정경훈, 「간재 전우 문집과 원고본 현황」(『한문교육논집』 57, 한국한문교육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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