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유학자 전우(田愚)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사숙(私塾)이다. 전우는 계화도를 ‘繼華島’로 고쳐 썼는데, 그것은 글자 그대로 이 섬이 중국을 이은 섬이라는 뜻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의 이름도 계화재(繼華齋)라 하였으니 역시 중국의 중화사상(中華思想)과 유가사상(儒家思想)을 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상왕등도로 들어갔으나 제자들이 찾아오는 데 교통이 불편하므로 다시 고군산(古群山)으로 옮겼다가 2년 후인 1912년에 계화도로 옮겨와서 별세할 때까지 10년간 이 곳에서 후학양성에 정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