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년(선조 34) 이광(李洸)이 창건하였다. 이광은 1574년(선조 7)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정여립(鄭汝立)사건 처리문제로 삭직되었다.
1592년 다시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아 용인의 왜군과 싸웠으나 패하였다. 이 해 가을 용인패전의 책임자로 탄핵을 받고 유배되었다.
1594년 유배에서 풀려나서 향리에 돌아와 영파정을 짓고, 이를 중심으로 백발계(白髮契)를 조직하여 향풍을 기르고 학문을 권장하는 데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