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宋時烈)의 수명(死刑)의 유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689년(숙종 15) 송시열은 희빈장씨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 뒤 서울로 압송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게 되었다. 6년 뒤인 1695년 무고함이 밝혀져 유림의 발의로 고암서원(考巖書院)을 세웠으며, 1731년(영조 7) 유허비를 세웠다.
1925년 퇴폐한 비각을 군수 이동한(李東漢)이 중수하였으며, 1973년 전면의 흙담을 헐어버리고 철책으로 바꾸었다. 고암서원은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고, 1747년에 세운 묘정비(廟庭碑)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