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문집 ()

최치원의 고운문집 중 표지
최치원의 고운문집 중 표지
유교
문헌
통일신라 때의 학자, 최치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6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통일신라 때의 학자, 최치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6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최치원의 저술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수가 인멸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몇 종이며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헌강왕에게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20권을 진헌(進獻)하면서 아울러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 등 4종 8권의 서목(書目)을 열기(列記)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사륙집(四六集)』 1권, 『고운문집(孤雲文集)』 30권,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1권이 있었던 만큼, 적어도 60권을 상회(上廻)하는 거질(巨帙)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계원필경집』 20권만이 온전하게 전하고, 문집 약간 권과 금석문(金石文) 몇 편이 전하고 있을 뿐 대부분 인멸되고 말았다.

편찬/발간 경위

『고운문집』은 고려시대 이후 역대로 누차 간행되었으나 고판본(古板本)은 한결같이 전하지 않고 있다. 현재 몇 종이 전하고 있으나 1926년 최치원의 후손 최국술(崔國述) 등이 3권 1책으로 간행한 것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오늘날 방간(坊間: 항간)에 전하는 『고운문집』은 모두 1926년 이후에 나온 것들이며, 실린 글들 역시 『계원필경집』과 『동문선(東文選)』, 불교관계 자료집, 금석문 등에 산재(散在)한 것을 한데 모아 엮은 것에 불과하다.

현재 기본 텍스트 구실을 하는 것은 1972년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大東文化硏究院)에서 영인·간행한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치원의 유문(遺文)을 거의 모두 수집(蒐輯)한 것으로, 그 내용은 크게 시문집, 『사산비명(四山碑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계원필경집』으로 나누어진다. 이 『최문창후전집』의 간행으로 최치원 연구에 새 전기(轉機)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고운문집』은 최치원의 저술 중에서 『계원필경집』과 『사산비명』을 제외한 시문 모두를 모은 것으로 사실상 습유(拾遺)의 성격을 띤다. 최치원은 평생 엄청난 분량의 시문을 이룩했지만 오늘에 전하는 것은 실로 초라한 형색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시는 현재 『계원필경집』에 60수, 그 밖의 여러 문헌에 56수가 전한다. 그는 한국 한문학사상 금체시(今體詩)와 칠언시(七言詩)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만당기(晩唐期)에 활동했던 탓인지 성당(盛唐)의 시풍(詩風)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으며, 시격(詩格)도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평을 받는다. 또, 당시 문인으로 활동함에 있어 ‘부(賦)’에 능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데, 현재는 단 1편의 부가 전하고 있을 뿐이다.

최치원은 ‘문장보국(文章輔國)’을 학자 문인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로 여겼던 만큼, 사대문서(事大文書) 및 공용문(公用文)을 작성하는 데 무척 유념하였다. 이에 관계된 글로는 현재 표(表) 7편, 장(狀) 6편, 계(啓) 1편이 전하고 있는데, 모두 다 변려문(騈儷文)의 절정이자 실용문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문장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지는 것을 늘 의식하였고, 또 보편적 가치 기준과 개념을 이끌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당시의 국제무대인 중국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의 대외관계(對外關係) 글은 한마디로 ‘국제화’라는 목표를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최치원은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법장화상전』, 『석순응전(釋順應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보덕화상전(普德和尙傳)』 등 여러 종의 승전(僧傳)을 이룩하여, 불교홍통(佛敎弘通)을 위한 삶을 살았던 고승(高僧)들의 경행(景行: 훌륭한 행실)을 기록하고, 이를 전기문학(傳記文學) 내지 역사 서술로까지 끌어올렸다. 이 가운데 『법장화상전』은 중국 화엄종의 제3조(第三祖)인 법장대사(法藏大師) 현수(賢首)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전기 자료로, 독특한 구성과 상세한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법장의 인간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이라든지 법장의 영험성(靈驗性)과 신이성(神異性)을 통해 새로운 법장관(法藏觀)을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실로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장화상전』은 최치원의 역사서술 방식 내지 역사의식을 살피는 데도 중요하다. 특히 법장의 생애를 십과(十科)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화엄사상(華嚴思想)에 입각하여 생애 전체를 통찰력 있게 조망(眺望)하고, 아울러 각 부분 상호간의 구분 및 인과관계, 연관성을 명확히 하여 서술함으로써 불교이론을 역사 서술에 훌륭하게 반영시켰다. 뒷날 고려 때 혁련정(赫連挺)의 균여전(均如傳)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이 밖에도 『유설경학대장(類說經學隊仗)』 3권 1책이 최치원의 저작으로 전해 오고 있으나, 이는 중국인 주경원(朱景元)의 저술로, 문체도 최치원의 문체가 아니고 내용면에서도 송대(宋代)의 학설이 들어 있어 그의 저술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참고문헌

『최치원전집(崔致遠全集)』1·2(최영성 역주, 아세아문화사, 1998·1999)
『국역고운선생문집』(최준옥 편, 학예사, 1973)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2)
「최치원(崔致遠)의 저작(著作)」(김중렬, 『한성어문학』1, 한성대학교, 1982)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