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필사본. 46장(27.4× 18.8cm). 간사자(刊寫者) 및 간사 연도 미상.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말미에 「우계선생연보 후설(牛溪先生年譜後說)」, 「노서일기(魯西日記)」, 「노서연보」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노서유사」는 『노서유고』 별집, 「부록 상」에도 수록되어 있다.
윤선거의 평상시 언행으로부터「거가(居家)」,「대인접물(待人接物)」,「출처사수(出處辭受)」,「위학방법(爲學方法)」 등에 이르기까지 항목의 분류 없이 서술하였다. 아들 윤증이 편차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주로 윤선거의 학문방법, 특히 하학공부(下學工夫)와 관련된 것이 많다. 윤선거가 허명(虛名)을 배척하고 실심(實心)을 중시하였음을 엿보게 하는 것들도 있다. 그는“성학(聖學)의 종지는『사서(四書)』에 다 들어 있고, 집주(集註)와 장구(章句)는 다시 여온(餘蘊)이 없다. 후세 유자들은 저술을 일삼지 않은 것이 옳다”고 하여, 저술보다 실천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는 역학에 침잠하여 후천도설(後天圖說)을 저술하였는데, 이 후천도설이 저술되기까지의 배경이라든지, 역학에 대한 견해 등을 자세하게 밝힌 내용이 있어 그의 역학 연구의 배경을 살필 수 있다. 이밖에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자신의 외조부인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상호 비교하여 그들 학문과 사상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도 윤선거의 우율관(牛栗觀)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모두 22조목에 불과하지만 윤선거의 생애와 학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노서유고』에는 당화(黨禍)에 연루될 것을 의식한 나머지 많은 자료들이 빠지거나 민감한 대목이 삭제된 채 실려 있다. 또 시(詩)와 서(書)가 주를 차지하여 윤선거의 인간적 면모와 행의(行誼), 평소의 언행 등을 자세히 살필 수 없는 난점이 있다. 본 「유사」는 윤선거의 언행을 분류하여 집약해 놓았기 때문에 문집 전체를 고열하지 않아도 그의 학문 대강을 살피기에 편리한 장점이 있다. 남계(南溪)박세채(朴世采)가 찬한 「행장」과 함께 읽으면 윤선거의 학문 세계를 더욱 자세히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