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805년(순조 5)박언배에게 동몽교관 조봉대부의 증직이 내려지면서 명정되어 충렬문을 건립하였다. 1976년에 보수하였다.
박언배는 박연(朴堧)의 5대손으로 곡성 삼오리(궁동)에서 출생하였다. 1626년(인조 4)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황주에서 전공을 크게 세운 뒤 안주싸움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날에 그의 부인(완산이씨)은 자결하였다. 이러한 충(忠)과 열(烈)이 알려져 1805년에 증직, 명정을 받게된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팔작지붕집이며, 다듬어진 원형의 초석위에 원주를 세우고 다포가구법을 갖춘 전형적인 정려양식이다. 사면 주위로는 홍살을 돌렸다. 뒷편에는 1959년에 세워 박연을 배향하는 오봉사(梧峰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