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름 1.34m, 높이 0.72m. 돌로 만든 물그릇으로, 원래 공주시 반죽동 대통사(大通寺)터에 공주 반죽동 석조(보물, 1963년 지정)와 함께 있었다. 곧 이 석조는 일제강점기에 공주시 중동에 주둔하였던 일본 헌병대가 말구유로 사용하기 위해서 공주시 반죽동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그 뒤에 석조가 중동초등학교 안에 있었으므로 ‘중동 석조’라고 불리게 되었다. 반죽동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석조는 ‘반죽동 석조’라고 불렸다. 1940년에 공주박물관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웅진동에 새로 건립한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조는 일본 헌병대가 사용하면서 깨뜨린 가장자리의 일부와 받침기둥인 탱석(撑石), 받침돌 등이 보수되어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은 상태이다. 규모는 공주 반죽동 석조보다 약간 작은 편이지만, 세부 양식이나 조각 수법은 같다. 이 석조와 공주 반죽동 석조는 어떤 건물 앞에 1쌍으로 배치하기 위하여 함께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는 네모난 바닥돌 위에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보다 작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는 둥근 받침기둥이 올려져 있는데, 겉면에는 1장의 꽃잎이 아래를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 12개가 원래의 모습대로 서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몸통은 둥글넓적한 대접처럼 생겼다. 겉면에 2줄의 선을 띠로 돌렸으며, 앞뒤좌우 4곳에는 둥글게 연꽃 무늬가 돋을새김되었는데, 공주 반죽동 석조에 비해 덜 닳아서 무늬가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 석조의 연꽃 무늬와 모양은 백제의 불교미술을 살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