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백자천손을 누리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당나라 장군 곽자의의 생일잔치 장면을 그린 그림. 곽분양향락도·곽자의행락도.
개설
내용
우리나라 곽분양행락도는 이제까지 알려진대로 중국 원본의 충실한 모사작품이라기보다는 중국에서 그려진 곽분양 주제의 그림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소설의 삽화나 화보 등 판화류의 영향을 받아 동시대의 궁중회화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당시 궁중의 화원들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1700년을 전후해 숙종이 쓴 『열성어제(列聖御制)』의 시문을 통해 곽분양행락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정조대 이후에는 『경도잡지(京都雜誌)』의 기록으로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혼인할 때 곽분양행락도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02년에는 궁중에서 순조, 순원후 가례에 실제로 곽분양행락도가 제작, 사용되기에 이르며, 이후 왕실의 모든 가례에 사용된 대표적인 병풍화로 자리잡았다. 이 사실을 통해 곽분양행락도에는 단순히 의식적, 장식적 욕구 이외에 당시 번창하고 영속하려는 조선왕실의 절실한 소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곽분양행락도」 연구」(김홍남, 『미술사논단』제34호, 한국미술연구소, 2012)
- 「조선후기 곽분양행락도 연구」(정영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대학원 석사논문, 199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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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당나라의 무장(697~781). 안녹산의 난을 토벌하여 도읍 장안(長安)을 탈환하였고, 뒤에 토번(吐蕃)을 쳐서 큰 공을 세워 사도(司徒), 중서령(中書令)에 이어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하여졌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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